🌍 배경 — 레오폴드의 콩고
콩고는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식민 지배를 받은 곳 중 하나였다.
1885년부터 1908년까지,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소유지였다. 나라가 아니라 왕 한 사람의 재산이었다. 레오폴드는 고무를 원했다. 고무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콩고인의 손목은 잘려 나갔다.
콩고 원주민 인구가 이 시기에 절반으로 줄었다는 추산이 있다.
1908년 국제 여론의 압박으로 레오폴드가 콩고를 벨기에 정부에 넘겼고, 이후 1960년까지 벨기에의 식민지가 됐다.
📮 루뭄바 — 우체국 직원에서 총리까지
파트리스 루뭄바는 1925년생으로, 우체국 직원이자 맥주 회사 영업 사원이었다.
1958년 콩고민족운동(MNC)을 창설해 독립 운동을 이끌었다.
1959년 반식민 봉기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감옥에 갔으나, 오히려 감옥에서 더 유명해졌다. 1960년 5월 콩고 최초의 의회 선거에서 그의 당이 의석 과반을 차지했고, 루뭄바가 콩고 최초의 민선 총리가 됐다. 서른다섯이었다.
🎙️ 세 개의 연설
1960년 6월 30일 오늘, 독립 선언식이 열렸다.
먼저 벨기에 왕 보두앵이 연설했다. 그는 레오폴드 2세가 "천재적인 구상으로 시작한 문명화 사업의 결실"이 콩고 독립이라고 했다. 손목을 자른 왕의 업적을 칭송한 것이었다.
다음은 대통령 카사부부가 예정된 온건한 연설을 했다.
그때 루뭄바가 일어섰다. 그의 연설은 예정에 없었다. 벨기에 왕과 외교관들 앞에서 그는 지난 75년을 말했다.
"우리는 새벽부터 밤까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온 조롱과 모욕과 구타를 잊지 않는다. 우리의 상처는 너무 깊고 아직 쓰라리다."
보두앵 왕이 자리를 떴다. 미국 대사관은 워싱턴에 보고서를 올렸다. 위험한 선동가.
훗날 분석가들은 말했다. 루뭄바의 죽음은 그날 연설에서 시작됐다.
🛢️ 24조 달러
콩고의 땅 아래에는 구리, 코발트, 우라늄,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광물 자원 가치가 24조 달러로 추산됐다.
독립 직후 벨기에의 지원을 받은 카탕가주가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광산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루뭄바는 미국과 유엔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소련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순간 냉전의 논리가 작동했다. 워싱턴은 그를 "아프리카의 피델 카스트로"라 불렀다.
1960년 8월 26일, CIA 국장 앨런 덜레스가 콩고 현지 요원에게 전보를 보냈다. 루뭄바의 제거는 긴급하고 최우선적인 목표다.
🔫 6개월
1960년 9월, 루뭄바와 함께 일하던 군 총사령관 모부투가 CIA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루뭄바는 총리직에서 쫓겨났다.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공항에 도착하는 그의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손이 뒤로 묶인 채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진이 전 세계에 퍼졌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현장에 있었으나 개입하지 않았다.
1961년 1월 17일, 루뭄바와 두 명의 동료가 카탕가주로 이송됐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구타당했다. 도착 후 벨기에 장교들의 감독 아래 몇 시간을 더 맞았다. 그날 밤 총살됐다. 여전히 서른다섯이었다.
🦷 치아 하나
시신은 땅에 묻혔다가 파내어졌다. 벨기에 경찰관 제라르 소에테의 지휘 아래 황산에 녹여 없앴다. 소에테는 훗날 자랑스럽게 이 일을 증언했다. 루뭄바의 치아 두 개를 기념품으로 챙겼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금관이 씌워진 치아 하나가 소에테의 딸에게서 벨기에 정부로 넘어갔다.
2022년, 벨기에 정부가 그 치아를 루뭄바의 가족에게 공식 반환했다. 처형된 지 61년 만이었다. 콩고에 돌아온 루뭄바의 흔적은 치아 하나뿐이였다.
🌑 지금
루뭄바를 제거한 모부투는 이후 32년간 콩고를 통치했다. 2001년 벨기에 의회 조사위원회가 루뭄바 암살에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고, 2002년 공식 사과했다. 형사 책임을 진 사람은 없었다.
2026년 현재, 벨기에 법원이 94세의 전직 외교관 에티엔 다비뇽을 루뭄바 불법 억류와 모욕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했다. 65년 만에 처음으로 관련자가 법정에 선다.
루뭄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공산주의자라 불렸다. 콩고의 부는 콩고에 남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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