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독일 울름 출생인 그는 스위스 특허청의 3급 심사관이던 1905년, 스물여섯의 나이에 논문 다섯 편을 발표했다. 인류의 물리학은 그 해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 1921년 노벨상. 1933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1939년, 그는 루스벨트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6년 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불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 편지를 평생의 단 하나의 실수라고 불렀다.
말년의 30년, 그는 하나의 문제에 매달렸다. 통일장 이론.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묶는 일이었다. 물리학계 대부분은 가망 없는 노력이라 여겼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같은 시기, 워싱턴의 다른 방에서도 그에 관한 기록이 쌓였다.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는 1932년 12월부터 그의 파일을 열어두었다. 파시즘 반대, 인종차별 반대, 핵무기 반대. 후버에게 이 모든 것은 공산주의의 증거였다. 파일은 22년간 1,427페이지로 불어났다.
1955년 4월 13일 수요일. 그는 복부대동맥류의 파열을 겪었다. 의사가 수술을 권했다. 그는 거절했다.
"내가 원할 때 가고 싶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우아하지 못한 일이다.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다. 이제 갈 시간이다. 나는 우아하게 떠날 것이다."
그는 병실로 서류를 가져오게 했다. 이스라엘 독립기념 라디오 연설문. 통일장 이론 계산지 열두 장. 안경. 만년필. 그는 계산을 계속했다.
4월 17일 일요일 저녁. 아들은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의붓딸은 같은 병원 다른 층에 있었다. 비서는 집으로 돌아갔다. 유언집행인은 뉴욕에 있었다. 조수는 연구소에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간이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는 밤에,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야간 간호사 알베르타 로젤이 교대 근무에 들어왔다. 그녀는 독일어를 몰랐다.
4월 18일 월요일 새벽 1시 15분. 그는 숨을 깊이 두 번 들이쉬었다. 독일어로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로젤은 들었다. 뜻은 몰랐다.
그는 떠났다. 일흔여섯 해였다.
오후, 시신은 트렌튼에서 화장됐다. 유골은 델라웨어 강 어느 지점에 뿌려졌다.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무덤은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뇌는 아무도 모르게 유족의 동의도 없이 병원의 병리학자에 의해 적출됐다. 잘게 쪼개어 마요네즈 병과 사과주 상자에 담긴 채, 자동차 트렁크에서 40년을 떠돌았다.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강물 위로 흩어진 재. 병 속에 잠긴 뇌 조각들.
그리고 독일어를 모르는 한 간호사의 귀에 남은, 뜻 모를 몇 개의 음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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