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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금요일

1월 9일 그래도 보고싶다 내 아들

 

    1940년생인 배은심은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녀는 광주에 살았다. 1980년에도 아이들은 무사히 커 주었다. 자랑스런 아들은 서울로 유학갔다.

1987년 6월 9일 그 아들이 최루탄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겁지겁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혼수상태, 그리고 27일간을 그곳에서 밤을 지새웠다.

최루탄에 맞아 피흘리는 아들의 사진이 전 세계 신문에 게재됐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군부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민주화 열기는 들불이 됐다.

결국 전두환, 노태우는 손을 들고 직선제를 선언했다.

아들은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7월 5일 어머니 배은심의 아들은 열사가 되어 숨을 거뒀다.

배은심은 아들의 뒤를 이어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

그녀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그러나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단단하고 현실적이었다.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아들을 죽인 책임을 묻기로 했다. 서대문 경찰서장, 중대장, 소대장, 그리고 최루탄을 쏜 전투경찰 1인을 살인죄로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기각했다.

국가를 상대로한 민사소송도 이어졌다. 1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아들의 핏값"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돈을 받지 않으면 국가에 귀속된다는 규정에 따라 수령했다.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다.

작은 집을 샀다. 그리고 "이한열 기념관" 현판을 달았다. 훈장도 달갑지 않았다.

그저 국가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명예를 되찾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함께 위로했다.

“맘 단단히 먹소. 앞으로 더 기막힌 일이 많을 것이네.”

[출처] “보고 싶다 내 아들, 이한열.” ‘이한열 어머니’ 배은심 친필 메모|작성자 여성동아


    두 번 쓰러졌다. 2022년 1월 9일 오늘 새벽 또 쓰러졌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꾹꾹 눌러 쓴 작은 메모 하나 남겼다.

"그래도 그립다

보고 싶다.

내아들, 이한열,"



1월 17일 민족 영웅의 죽음

      그는 알바니아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오스만 제국의 인질로 끌려갔다. 술탄의 궁정에서 최고의 군사 훈련을 받으며 오스만군의 지휘관으로 성장했다. 오스만인들은 그를 고대의 정복자 '알렉산더'에 비유해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