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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첫번째 맥주

  '캐리 네이션 Carry Nation'은 남편의 알코올 중독으로 결혼 내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어느 날, "술집을 부수어 나라(Nation)를 이끄라(Carry)"는 운명적인 신의 계시를 듣고, 서슬 퍼런 도끼를 든 채 전국의 술집을 습격했다. 분노한 술집 주인들이 입구마다 "모든 나라(Nations) 사람은 환영하지만, 캐리(Carrie)만은 절대 사절한다"는 문구를 써 붙일 정도로 그녀의 투쟁은 강렬하고도 집요했다. 이러한 개인의 분노가 국가적 법령으로 이어진 데에는 시대적 비극도 한몫을 했다. 1914년 발발한 세계대전은 미국의 금주 여론에 불을 지피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국의 맥주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이들은 대부분 독일 출신이었고, 이들이 조국 독일과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다는 의구심은 곧 독일 맥주에 대한 국민적 반감으로 이어졌다. 정치권은 이러한 반독 정서를 기회 삼아 금주법을 준비했고, 마침내 1920년 1월, 알코올 함량 0.5% 이상의 술에 대해 생산과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금주법이 미국 전역에 선포됐다. 그러나 오히려 금주법은 갱단에겐 호재였다. 시카고의 냉혹한 마피아 보스 '딘 오배니언'은 평소 정갈하게 꽃을 다듬는 꽃집 주인으로 위장하며 이중생활을 즐겼다. 그는 상대 마피아 조직에게 불법 양조장을 팔아 넘겼다. 그러나 그는 연방 수사국이 곧 그 양조장을 급습할거라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살해됐다. 그후 갱단들의 피의 복수가 이어졌다. 길었던 어둠의 시대를 끝낸 것은 역설적이게도 경제적 절망이었다. 대공황의 늪에 빠진 미국은 새로운 일자리가 절실했고, 정치인들은 양조장의 합법화가 수많은 고용을 창출할 돌파구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새로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술의 합법적 재생산과 판매를 전격 제안했다. ​ 1933년 4월 7일 오늘 자정이 지나자마자, 합법적으로 생산된 첫 번째 맥주를 가득 실은 버...

4월 7일 한 조선인의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 미군 포로의 삶

  조선인으로 태어나 18세의 나이에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됐다. 일본 관동군으로 소련군과의 전투에 투입됐다. 일본은 참패했다. 소련군의 포로가 됐다.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소련과 독일군의 전투에 소련 군복을 입고 투입됐다. 소련군이 패했다.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독일은 '동방군단'을 만들었고 독일 군복을 입혀 프랑스 노르망디의 해변을 지키게 했다. 독일은 패망했다. 미군의 포로가 됐다. 영어는 못했고 독일어도 못했다. 러시아어도 못했고 일본어 조금과 한국어로 대답했다. 미군은 알아듣지 못했다. 영국의 수용소로 보내졌다. ​ 1992년 4월 7일 오늘, 이 무명에 가까운 한국인이 미국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족들은 그가 그저 평범한 아버지인 줄로만 알았다. 미군이 알아듣지 못한 그 말은, "이제 제발, 전쟁이 끝난 건가요?"였다. ​ 출처 : 제2차 세계대전 앤터니 비버 저

4월 5일 링컨의 죽음

  1855년 여름 후추등의 향신료 회사로 유명한 맥코믹McCormick이 일리노이주의 한 회사가 자신의 특허권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맥코믹측은 전직 법무장관까지 선임했다. 싸움은 치열했다. 재판은 시카고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상대회사의 변호인단은 시카고의 법원과 판사에 대해 경험있는 변호사를 찾았다. 그저그런 변호사 링컨이 선택됐다. 링컨에겐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보수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는 열심히 변론을 준비했다. 그러나 소송재판 장소가 다른 주 신시내티로 바꿨다. 링컨을 고용할 목적은 사라졌다. 변호인단은 그를 잊었다. 그러나 링컨은 열심이었다. 그는 기소장뿐만이 아니라 다른 중요 서류도 요구했다. 변호인단은 답하지 않았다. 링컨은 자신이 만든 자료를 들고 직접 신시내티로 향했다. 그리고 변호인단을 만나 "같이 갑시다."라고 힘차게 말했다. 변호인단의 중요 변호사 스탠턴은 그를 무시한채 법원으로 향했다. 스탠턴은 링컨에게 "긴팔 원숭이"는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링컨은 그런 스탠턴에게 매료 됐다. 스탠턴의 매혹적인 연설, 공을 들여 준비한 철저함, 그리고 책임감. 6년후 대통령 링컨은 그에게 가장 막강한 직책 전쟁장관부를 제안했다. 스탠턴은 받아들였다. ​ ​ 1865년 4월 5일 오늘, 개인적 원한이나 굴욕등도 초월한 비범한 능력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었다. "이제 그 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이후 스탠턴은 링컨의 이름만 들어도 주저앉아 통곡했다. ​ ​ - 출처 : 권력의 조건(도리스 컨스 굿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