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에서 탈영한 장준하와 김준엽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천신만고끝에 한국 광복군 훈련반이 있는 중국 중앙학교에 당도했다. 그곳에서의 한국 광복군의 처지는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목총 한자루 없는 실정이었다.
장준하와 김준엽은 동료 한국군을 위한 애국심 고취와 정신무장을 위한 교양 강의를 시작했다.
또한 등사시설은 물론 종이 한장 구하기 힘든 처지에도 가마니를 깔고서 원고들을 모으고 써서 수작업의 잡지를 발행했다.
표지를 위한 천을 구할 수 없어 김준엽이 입고 있던 팬티를 빨고 또 빨아서 '등불'이라는 제호를 붓글씨로 써 두 권을 제작한 것이다.
이 '등불'은 한국 광복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김준엽은 팬티없이 생활했다.
1944년 9월 10일 오늘, 장준하와 김준엽이 서울 탈환을 위한 광복군 훈련반이 있는 임천에 도착했다.
죽음을 건 탈영의 여정이었다.
광복군은 피나는 훈련으로 서울 침공으로 자력으로의 '광복'을 준비했다.
서울 침공 며칠전 일본은 미국에 항복했다.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돌려보던 두권의 '등불'은 전쟁중 소멸됐다.
출처 : 장준하 평전 김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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