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About)

"안녕하세요" History Diary 365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역사 속 숨겨진 이야기를 매일 기록하는 공간입니다. 🏛️ 매일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여, 그날의 강렬했던 기억과 교과서 밖 생생한 역사적 순간들을 조명합니다. ⏳ 모든 글은 직접 탐구한 문헌과 서적 등 객관적인 사실(Fact)을 바탕으로 작성되며 📜,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는 깊이 있는 시선을 지향합니다. 문의나 제안, 혹은 궁금한 역사가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 Email: historydesign00@gmail.com

2026년 1월 31일 토요일

4월 22일 카틴 숲의 대학살

     1908년 4월 22일 오늘 태어난 야니나 레반도프스카Janina Lewandowska는 폴란드의 여군이었다.

그녀는 20세때 여성 최초로 5,000미터 낙하산 강하에 성공했다.

폴란드는 소련에 의해 점령당했다.

스탈린은 폴란드 말살정책으로 수감된 폴란드 군인, 지식인, 정치인들을 살해하기로 계획했다.(베리야 계획)

그녀도 수감되었다.

소련 당국은 희생자들에게 집으로 편지를 쓰도록 했다.

가족들은 그 편지를 받아보지 못했다. 그 대신 소련의 비밀경찰이 편지의 주소지로 찾아갔다.

가족들은 카자흐스탄, 시베리아로 강제 이송됐다.


    1940년 4월 22일 오늘, 카틴 숲에서 폴란드인은 학살당했다.

그녀는 수많은 희생자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출처 : 제2차 세계대전 앤터니 비버



4월 11일 '피' 묻은 스웨터

    잘릴 질라니는 '천 개의 강이 흐르는' 방글라데시에서 네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엄마이다.

남편은 얼마전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잘릴은 수도 다카 인근의 스펙트럼 스웨터라는 회사에서 미싱공으로 일했다.

근로법에 의한 최저임금은 930다카이지만 그녀와 5,000여명의 미싱공들은 월 700다카, 12유로(15,000원) 받았다.

그녀와 가족은 천으로 가려진 대문 또는 문이라고는 할 수 없는 곳에 거주했다.


    2005년 4월 11일 오늘 새벽, 그녀가 바로 직전 일했던 9층짜리 건물이 붕괴됐다.

사고 나던 순간에도 미싱공들은 재봉틀에 매달렸다. 순간 그들은 붕괴된 건물에 매몰됐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정확한 희생자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끝까지.

잘릴 잘라니와 함께 운좋게(?) 생존한 직원들은 모두 해고됐다.

단 한푼의 보상금도 없었다. 직업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기아구제프로그램에서 제외됐다.

출처 : 굶주리는 세계 장 지글러

 

4월 7일 回婚詩

 다산 정약용은 20여일간 병석에 누워 있었다.

혼인 60주년 날 병세가 뚜렷이 호전되어 시 한편을 지었다.

回婚詩 회혼시

六十風輪轉眼翩 육십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바람결에 지나갔구려

穠桃春色似新婚 복사꽃 무성한 봄빛은 신혼때와 같소

生離死別催人老 살아 헤어지고 죽어 이별, 늙음을 재촉하고

戚短歡長感主恩 슬픔은 짧았고 기쁨이 길었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오

此夜蘭詞聲更好 이 밤 난의 향기 다시 좋고

舊時霞帔墨猶痕 그 날 붉은 치마의 먹 자국은 아직도 남아있소

剖而復合眞吾象 나뉘었다가도 다시 합쳐지니 꼭 우리네 모습이니

留取雙瓢付子孫 그 한쌍의 표주박을 자손에게 남겨줍시다.


    15세에 혼인해 아내와 오늘로 꼭 60년을 살았다.
  
    1836년 4월 7일 오늘 아침, 정약용은 이 시를 아내에게 남겼다.
그리고 오늘, 조용히 눈을 감았다.

4월 6일 전쟁 선포

     1916년 가을, 유럽 솜강 전투에서만 100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미국 부모들의 공포를 파고든 우드로 윌슨의 재선 슬로건은 명확했다.

"그는 우리를 전쟁에서 지켜냈다(He Kept Us Out of War)."

"내가 당신의 자식을 전쟁터로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이 지금 살아있는 것이다"라는 그 약속 덕분에, 윌슨은 간신히 재선에 성공했다.


    1917년 4월 6일 오늘. 윌슨은 의회가 통과시킨 대독일 선전포고안에 서명했다.

"당신의 아들을 지켜주겠다"던 그 약속이 깨지는 데는, 선거가 끝나고 불과 5개월이 걸렸을 뿐이다.



2026년 1월 30일 금요일

6월 10일 전선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오늘로 이곳에 온 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곳의 시간은 바깥세상과는 다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6월의 햇살은 따뜻하지만, 병실 안의 공기는 차갑고 무겁기만 합니다.

어제는 전선에서 기차 한 대가 통째로 부상병들을 싣고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참호 속에서 며칠을 굶고 싸우다 온 탓인지, 사람의 형체라기보다 진흙 덩어리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밤을 꼬박 새워 그들의 상처를 닦아냈습니다.

어떤 병사는 다리를 잃었고, 어떤 병사는 눈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육체의 상처보다, 옆에서 함께 싸우다 죽어간 전우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인 것 같습니다.

제 손은 붕대를 감느라 감각이 무뎌졌고, 옷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가실 날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 손을 잡고 건네는 가냘픈 미소를 볼 때마다, 저는 제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저는 마지막 한 명의 병사가 일어설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의 평화를 빌며,


    1915년 6월 10일, 프랑스 '생 발레리 앙 코'에서 마리온 올림.


출처: 마리온 맥쿤 라이스Marion McCune Rice의 서신(1915), 브래틀보로 역사협회 및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소장.



12월 29일 박수할때 떠나려 해도

     어느 시골마을의 한해를 마무리 하는 어느날, 동네의 대소사를 주관하는 '원동계' 즉 일종의 상조회의 차기 회장을 고르는 고민이 있었다.

일부는 젊은이가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또 일부는 세대 어르신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한 집안의 아버지를 지지하게 됬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연륜을 고려하여 마을의 어른신이자 한 집안의 아버지를 선택하였다.

지지를 받은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보람있는 일을 해보고도 싶었지만 한편으론 젊은 세대가 맡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새로이 선출된 '원동계'의 회장은 모두에게 대견함과 고마움을 느끼면서 지난 세월을 회상하게 된다.


    2002년 12월 29일 오늘, 국민 드라마로 여겨졌던 '전원일기'가 그 마지막 회로 끝을 맺었다.

22년 2개월, 1088회였다. 마지막회 제목은 "박수할때 떠나려 해도"였다.

첫회의 제목은 "박수칠때 떠나라"였다.





⚖️ [서평] 신화가 된 이름 뒤에 숨겨진 민낯, 『이승만 평전』(김삼웅 저)

    ✒️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이승만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이 또 있을까? 한쪽에서는 건국의 아버지(國父)라 추앙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라 비판한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원로 언론인 김삼웅은 이 책 『이승만 평전』을 통해 그를 둘러싼 신화의 거품을 걷어내고, 냉정한 사료(史料)의 법정에 그를 세운다.

저자는 이승만이 독립운동보다 '자신의 권력 쟁취'가 우선이었던 기회주의자였음을 시종일관 고발한다.

1. 임시정부 탄핵 1호, 분열의 씨앗

많은 이들이 이승만을 탁월한 외교 독립운동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저자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부터 보여준 그의 행적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그는 통합이 절실했던 독립운동 진영에서조차 끊임없이 파벌을 만들고, 자금을 독점하려 했으며, 결국 '위임통치 청원' 사건 등으로 인해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탄핵(면직)당했다.

"이승만은 자신이 주도하지 않는 조직이나 단체는 가차 없이 파괴하거나 분열시켰다. 그는 미주 한인사회의 분열뿐만 아니라 상해 임시정부, 나아가 독립운동계 전반의 통합을 저해하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 김삼웅, 『이승만 평전』 중에서

책은 그가 미국에서 보낸 시간조차 조국의 독립을 위한 헌신이라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포석이었음을 여러 증거를 통해 제시한다.

2. 친일파와 손잡고 반민특위를 해산하다

이 책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해방 직후의 기록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외쳤던 그는 정작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켰다. 저자는 이승만이 자신의 취약한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친일 경찰과 관료들을 그대로 기용했음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승만은 친일세력을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한국 현대사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게 만들었다. (...) '반공'을 국시로 내세워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들을 자신의 전위대로 활용한 것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 김삼웅, 『이승만 평전』 중에서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역사의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3. 국민을 버린 대통령, 민주주의의 학살자

한국전쟁 당시 한강 다리 폭파 사건, 보도연맹 학살 사건 등 책은 정권 유지를 위해 자행된 끔찍한 국가 폭력을 기록한다. 그의 권력욕은 결국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라는 헌정 사상 최악의 범죄로 치닫는다. 책은 그를 맹자의 말을 빌려 '독부(독재자)'라고 칭한다.

"그는 '국부(國父)'가 아니라 '독부(獨夫)'였다. 인의를 잃어 도와주는 이 없이 홀로 된 사내, 민심이 떠난 외로운 독재자였다. 4월 혁명은 바로 이 독부에게 내려진 역사의 심판이었다." - 김삼웅, 『이승만 평전』 중에서

김삼웅의 『이승만 평전』은 불편한 책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잘못된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비극은 또다시 반복된다"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이 불편한 진실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 이승만 평전,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 김삼운 저, 두레 출판, 2020/10



3월 21일 히틀러의 의해 무너진 독일의 전통적 상징

     1932년 11월, 나치는 의회선거에서 선두를 획득했다. 공화국의 대통령 폰 힌데부르크 원수는 히틀러를 내각총리로 임명하게 되었다.

히틀러는 나치의 돌격대 SA, 나치 친위대 SS, 극우 민병대를 앞세웠다.


    1933년 3월 21일 오늘, 히틀러는 포츠담의 프리드리히 대제의 무덤이 있는 요새교회에서 나치 의회를 개원했다.

힌덴부르크 원수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충성을 맹세했다. 헌법수호를 선서했다.

그리곤 전권을 요구했다. 공포를 느낀 의원들은 전권이양을 찬성했다.

그렇게 독일 민주주의는 오늘 무너졌다.


출처 : 유엔을 말하다 장 지글러

진보와 야만 클라이브 폰팅



3월 30일 파묘되는 신나치의 성지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기차로 서너시간 달려가면 레온딩Leonding에 이른다.

악명높은 나치 수용에서 석방된 사람들은 이곳 부근에서 소풍을 즐기곤 했다.

이곳에 방치된 두 무덤이 있다.

커다란 검은 십자가는 기울어져 있고 소나무 한 그루가 무덤에 솟아있다.

타원형의 묘석 명판에 쓰인 글자가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알로이스 히틀러, 세관 고급 공무원 향년 65세로 1903년 1월 3일 사망

그의 부인 클라라 히틀러, 향년 47세로 1907년 사망. 고이 잠드소서'

그들의 아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어 이 무덤에 화환을 올리고 참배했다.

1938년에는 그랬었다.


    2012년 3월 30일 오늘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아돌프 히틀러 부모의 무덤을 철거했다.

이유는 신 나치주의자들의 순례지로 변질되서이다.

얼마전에는 꽃과 화환이 놓여 있었다.


출처 : 유럽사 산책 헤이르트 마크



🍔 1월 31일, 사회주의 국가의 첫 자본주의 햄버거

     〽️ 맥도날드 빅맥의 가격 3.75루블.

소련 노동자의 한 달 급여 약 150루블의 2.5%나 됐다.

한 달 버스 이용권이 3루블이었다.


    1990년 1월 31일 오늘, 소련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소련 맥도날드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맥도날드 매장이었다.

30,000여명의 모스크바 시민이 첫 빅맥을 먹기 위해 수 킬로미터의 줄을 섰다.

첫번째 손님은 고아원의 아이들로 무료 햄버거를 제공 받았다.

소련은 오늘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약 2년 후 해체됐다.

그리고 32년 후...


    2022년 3월 14일, 맥도날드의 상징인 노란색 M자 골든 아치가 철거됐다.

30,000여명의 모스크바 시민이 마지막 빅맥을 먹기 위해 수 킬로미터의 줄을 섰다.



1월 30일 국왕의 처형과 복수

     163cm의 단신에 심한 말더듬이 였던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과 교회의 예배의식을 의회에 강요했다.

그는 의회의 통제없이 세금을 걷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기사 서임에 수수료를 징수하고, 국왕이 헐값에 물건을 사들일 수 있는 강제매입권을 사용했으며, 작위를 마구 수여했다. 특히 이 시기에 관직 매매가 국왕의 주된 수입원이기도 했다.

이러한 수단들의 남용은 모든 계급의 반발만 불러 일으켰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의 귀족계급에 까지 영국국교회를 강요함으로써 종교적인 대반란의 불을 지폈다.

스코틀랜드 대귀족과 지주들은 소작인들의 무장과 도시민들의 자금 덕분에 강력한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정의 군사력은 그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의회와 동맹을 체결했고 그 중심엔 혜성처럼 나타난 '올리버 크롬웰'이 있었다.

이 잉글랜드 내전에서 참패한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로 도망쳐 투항했으나 스코틀랜드의 반군 세력은 돈을 받고 그를 크롬웰에게 인계한 후 잉글랜드에서 철수했다.


    1649년 1월 30일 오늘, 찰스 1세가 반란죄로 사형선고 후 처형됐다.

영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처형된 국왕이 됐다.

올리버 크롬웰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연방의 호국경이 되어 연방 최고 통치자가 됐다.

9년 후인 1658년 호국경 크롬웰이 사망하고 얼마 뒤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옹립되면서 왕정이 복고됐다.


    1661년 1월 30일 오늘, 찰스 2세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형시킨 크롬웰의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어 목을 잘랐다.

찰스 2세는 일부러 오늘을 택했다.

크롬웰의 목은 웨스트민스터 홀 지붕위에 매달렸다. 20년 넘게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299년후에 땅에 묻혔다.


출처 :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페리 앤더슨저



1월 29일 최초의 자동차, 최초의 운전자

     벤츠 파텐트-모터바겐 Benz Patent-Motorwagen

외관 : 불안정한 4륜 대신 조향이 쉬운 3륜 자전거 형태

운전대 : 둥근 형태가 아닌 단순화 된 막대기 모양(Tillr)

엔진 : 0.75마력(hp)의 954cc의 단기통 4행정 엔진 장착

속도 : 400rpm의 최고 속도 16km/h (10mph)

변속 : 전진 1단 기어 채택 (후진 불가)

연료 : 약국에서 판매하는 '리그로인 Ligroin' 주입

연비 : 리터(L)당 10km 주행, 4.5L 연료탱크 장착

가격 : 600 골드 마르크

제조 판매 : Benz & Company (Benz & Cie. Rheinische Gasmotoren-Fabrik)


    1886년 1월 29일 오늘, 카를 벤츠 Karl Benz가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삼륜차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특허번호는 No. 37435였고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이 최초 자동차의 최초 운전자는 그의 아내이며 그녀는 두 아들을 태우고 106km 떨어진 친정으로 장거리 주행을 떠났다. 남편은 몰랐다.

도중에 그녀가 연료를 샀던 약국은 '세계 최초의 주유소'라는 간판을 달고 지금도 영업중이다.






1월 28일 이루지 못한 우주에서의 평범한 수업

     1948년생인 '샤론 크리스타 맥올리프 Sharon Christa McAuliffe'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환하게 웃는 얼굴, 두 아이를 가진 워킹 맘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교실을 단지 우주로 옮겨 놓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우주에서 느낀 감동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하는 후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11,41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NASA의 '우주 교사 프로트 Teacher in Space Project'에 선발됐다.

그러나...


    1986년 1월 28일 오늘, 그녀를 포함하여 승무원 7명을 태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여 전원 사망했다.

발사 73초만이었고 폭발 원인은 작은 오링의 결함 때문이었다.

21년 후 다른 선생님이 우주에서 그녀의 수업을 대신 진행하며 그 꿈을 이어갔다.

당시 발사 현장을 지켜봤던 6살의 딸은 어머니의 뜻을 이어 선생님이 됐다.


🎗️



1월 27일 "174517"

     1943년 12월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청년이었던 '프리모 레비 Primo Levi'가 파시스트에 저항하는 파르티잔 활동 중 체포됐다.

유대인임이 밝혀지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열차에 태워졌다.

팔뚝에 '174517' 라는 번호가 새겨졌고 그의 이름은 없어졌다.

그는 이제 인간이 아닌 독일 제국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부속품일 뿐이었다.

레비는 수용소 내부를 화학 실험실을 관찰하듯 묘사했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 현실의 고통 속에 눈빛은 꺼지고,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남의 빵을 훔치고, 수용소장에게 아부하거나 특별한 기술로 남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바닥이 어디인지를 묻고 있었다.

소련군이 다가오자 독일군은 수감자를 이끌고 서쪽으로 퇴각했다.

레비는 성홍열에 걸려 병동에 버려졌다. 레비는 동료와 함께 난로를 설치하고 버려진 감자를 나눠 먹으며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았다.

서로가 빵을 뺏는 대신 서로를 돕기 시작했다.


    1945년 1월 27일 오늘, 레비를 포함한 죽지 못한 7,000여명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데는 10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67세때 자살했다.

숫자 '174517' 이 그의 묘비에 새겨졌다. 그의 수감번호였다.


출처 :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1월 26일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1905년 1월 26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광산 감독관 프레데릭 웰스 Frederick Wells는 광산을 순찰하던 중 벽에 박힌 거대한 물체를 발견했다. 처음엔 유리 조각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다이아몬드 원석인 '컬리넌(Cullinan)'이었다. 무려 3,106캐럿(약 621g), 어른 주먹만 한 크기였다.

이 보석을 영국의 에드워드 7세에게 바치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송'이었다. 전 세계의 도둑들이 이 보석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영국 정부는 무장한 탐정들을 고용하고, 금고가 설치된 호화로운 증기선을 띄워 요란하게 호송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배에 실린 것은 가짜 모형이었다. 진짜 다이아몬드는 작은 상자에 담겨 일반 등기 우편(Registered Post)으로 부쳐졌다. 우표 값은 단돈 3실링(약 300원)에 불과했다.

    다이아몬드는 아무도 모르게 버킹엄 궁전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후 세공사 조셉 아셔 Joseph Asscher가 이 원석을 쪼개는 순간, 긴장감에 기절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현재 이 다이아몬드는 쪼개져 영국 국왕의 지팡이와 왕관을 장식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105개로 쪼개졌다. 작은 조각은 세공비 명목으로 세공사가 가져갔다.

영국 왕실은 그 조각까지 사들였다. 모든 다이아몬드는 영국 왕실이 소유했다.





1월 26일 인조의 새해 아침

     대청(大淸) 황제가 조선 국왕에게 고하노라

짐(朕)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너의 강토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금 네가 외로운 성(孤城)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오랫동안 형세를 버티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믿기 때문인가?

너는 죽어가는 명(明)나라가 구원병을 보내줄 것이라 믿는가?

그들은 이미 쇠락하여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처지다.

너를 도우러 올 군대는 없다.

아니면 네가 험준한 산성을 믿고, 추위가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보라, 하늘이 내리는 이 혹독한 추위는 너희 군사들을 얼어 죽게 만들지만, 북방에서 자란 우리 군사들에게는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늘조차 너를 버리고 짐을 돕고 있지 않은가.

짐은 너를 죽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네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네 곁에서 화친을 배척하고 싸움을 부추긴 어리석은 신하(척화신)들 때문이다.

살 길이 딱 하나 있다.

너를 그르친 저 간신들을 묶어 성 밖으로 보내라.

그리고 성문을 열고 나와 짐의 앞에 무릎을 꿇어라.

네가 만약 고집을 피우며 끝까지 성 안에서 쥐새끼처럼 버틴다면, 짐은 단칼에 성을 무너뜨리고,

너의 종묘사직을 짓밟고 씨를 말려버릴 것이다.

성문을 열고 나와 목숨을 보전할 것인가,

아니면 앉아서 참혹한 죽음을 맞을 것인가.

살고 죽는 것, 보전하고 멸망하는 것은 오직 너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

    숭덕(崇德) 2년 정월 초하루 대청 황제 홍타이지


    1637년 인조 15년 1월 26일 오늘, 음력 새해 첫날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오늘 이 편지를 받고 대성통곡했다.

오늘로부터 29일 후 곤룡포를 벗고 남색 융복인 신하의 옷으로 갈아입고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었다.' 정축하성(丁丑下城)

편지의 원본은 남아 있지 않으며 번역되어 기록해 놓은 한문본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원본내용이 기록 된 만주어 원본 '만문노당 (滿文老檔)'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보관되어 있다.


출처 : 승정원 일기 인조 15년 1월 1일



1월 25일 12살 지능의 알 카포네 사망

     소니 Sonny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매독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일한 유산이었다.

면역 체계가 약해져 귀를 앓았고 결국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뇌수술까지 받았다.

마트에서 3.5달러짜리 물품을 훔치다 적발됐다. 진통제였다.

어렵게 대학 졸업 후 외판원, 식당등의 일로 가난한 삶 속에서도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했다.

그의 아버지는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많은 돈을 자랑했다.

그러나 아들 소니는 그런 아버지의 삶을 철저히 외면했고, 후에 이름까지 개명했다.


    1947년 1월 25일 오늘, '소니'의 아버지이자 마피아의 두목인 '알 카포네 "Al" Capone'가 사망했다.

아들에게 물려 준 매독에 의한 뇌출혈과 폐렴이 사망 원인이었다.

그는 매독균으로 인해 죽기 전 12살의 지능만을 가지고 있었다.



1월 24일 윈스턴 처칠경 사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즉위 후 첫번째 가터 훈장의 주인공으로 Mr.처칠을 지목했다.

Mr.처칠은 공식적으로 윈스턴 처칠 경 Sir Winston Churchill이 됐다.

훈장의 수여 명분은 그의 '국가에 대한 위대한 헌신'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1937년 '팔레스타인 왕립위원회'에서 유대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를 따로 만드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강력히 반대했고, 영국의 위임통치를 주장했다.

훈장은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위대한 헌신'의 결과였다.


    1965년 1월 24일 오늘, 윈스턴 처칠이 사망했다.

평소 '아버지와 같은 날 죽고 싶다'고 말했는데 정확히 같은 날 사망했다.

그는 아버지보다 정확히 2배 더 살았다. 향년 90세였다.

팔레스타인은 정확히 그의 논리 속에 아직도 신음하고 있다.

"Honi soit qui mal y pense (악한 생각을 하는 자에게 수치가 있을지어다)"

훈장 중앙의 붉은 십자가는 잉글랜드의 수호성인 '성 조지(St. George)'를 상징한다.

🎖️전설에 따르면 무도회에서 한 백작 부인의 파란색 가터(양말 대님)가 흘러내려 사람들이 비웃자, 왕이 그것을 주워 자신의 다리에 맸는데 왕의 기사도 정신을 기려 가터훈장(the Order of the Garter)이 제정됐다고 전해진다. 군주와 왕세자를 제외하고 24명에게만 수여되며, 24명중 사망자가 나올 경우에만 다음 수여자가 결정된다.




1월 23일 최초의 여성의사 탄생

     1821년생인 엘리자베스 블랙웰 Elizabeth Blackwell은 의대를 지원했으나, 모든 의과대학은 여자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뉴욕의 제네바 의대 학장은 남학생들의 의견을 묻기로 하고 학생들에게 투표를 맡겼다.

남학생들은 하나의 장난이나 이벤트로 여기고 '찬성'에 표를 던졌다.

그녀는 입학했지만, 주위의 조롱과 따돌림은 물론이고 해부학등 일부 수업에서는 참관조차 거부 당했다.


    1849년 1월 23일 오늘, 그녀는 세계 여성 최초의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수석이었다.

학장은 그녀에게 학위기를 건네면서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최초의 여성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으나, 편견은 여전했다.

외과 치료 중 왼쪽 눈이 감염되어 안구를 적출했다.

회복대에 누운 그녀 곁엔 절친한 친구 나이팅게일 Nightingale이 지켜줬다.

"엘리자베스 블랙웰의 제네바 의과대학 졸업장(학위증). (글래스고 대학교 기록보관소 /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1월 22일 여왕 빅토리아 서거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의 여왕이자,

신앙의 수호자이시며,

하노버의 공주님이자,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의 여공작이시고,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비이자,

작센의 왕자비이시다.

인도의 여황제이시며,

조지 4세 왕립 기사단장이고,

가터 기사단장,

엉겅퀴 기사단장,

성 패트릭 기사단장,

바스 기사단장,

세인트 마이클 앤드 세인트 조지 기사단장,

영국령 인도 기사단장,

인도 메리트 기사단장,

인도성(星) 기사단장,

로열 빅토리아·앨버트 기사단장,

인도 제국 기사단장,

인도 왕좌 기사단장,

무공 기사단장이시고,

빅토리아 왕립 기사단장이시기도 하다.

독일 제국 빌헬름 2세 황제의 외할머니이시며,

러시아 제국 로마로프 가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외할머니되시고,

윈저 가문 조지 5세의 친할머니이시며,

스페인 브르봉 가문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의 외할머니이시고,

노르웨이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모드 왕비의 친할머니이시며,

루마니아 호엔촐레른 가문의 마리아 왕비의 친할머니이시고,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소피아 왕비의 외할머니 되시는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Alexandrina Victoria 여왕 폐하께서,


    1901년 1월 22일 오늘, 서거했다. 향년 81세.

오늘 장례식에 외손자와 아들, 손자들이 나란히 섰다.
그후, 그들은 서로의 나라를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1901년 2월, 런던 시내를 통과하는 빅토리아 여왕의 거대한 장례 행렬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점(조감도)으로 그린 그림으로 Henry William Brewer의 작품으로 현재 예일 영국 예술 센터(Yale Center for British Art)가 소장하고 있다.

🕊️ 5월 13일: 파티마의 계시와 교황의 용서

  🐑 파티마의 언덕과 세 명의 목동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한적한 마을 파티마의 코바 다 이리아 언덕에서 초자연적 사건이 시작됐다. 루치아(10세), 프란치스코(9세), 히야친타(7세) 등 세 명의 사촌 남매 앞에 빛나는 여인의 형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