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 금요일

1월 30일 국왕의 처형과 복수

     163cm의 단신에 심한 말더듬이 였던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과 교회의 예배의식을 의회에 강요했다.

그는 의회의 통제없이 세금을 걷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기사 서임에 수수료를 징수하고, 국왕이 헐값에 물건을 사들일 수 있는 강제매입권을 사용했으며, 작위를 마구 수여했다. 특히 이 시기에 관직 매매가 국왕의 주된 수입원이기도 했다.

이러한 수단들의 남용은 모든 계급의 반발만 불러 일으켰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의 귀족계급에 까지 영국국교회를 강요함으로써 종교적인 대반란의 불을 지폈다.

스코틀랜드 대귀족과 지주들은 소작인들의 무장과 도시민들의 자금 덕분에 강력한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정의 군사력은 그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의회와 동맹을 체결했고 그 중심엔 혜성처럼 나타난 '올리버 크롬웰'이 있었다.

이 잉글랜드 내전에서 참패한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로 도망쳐 투항했으나 스코틀랜드의 반군 세력은 돈을 받고 그를 크롬웰에게 인계한 후 잉글랜드에서 철수했다.


    1649년 1월 30일 오늘, 찰스 1세가 반란죄로 사형선고 후 처형됐다.

영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처형된 국왕이 됐다.

올리버 크롬웰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연방의 호국경이 되어 연방 최고 통치자가 됐다.

9년 후인 1658년 호국경 크롬웰이 사망하고 얼마 뒤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옹립되면서 왕정이 복고됐다.


    1661년 1월 30일 오늘, 찰스 2세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형시킨 크롬웰의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어 목을 잘랐다.

찰스 2세는 일부러 오늘을 택했다.

크롬웰의 목은 웨스트민스터 홀 지붕위에 매달렸다. 20년 넘게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299년후에 땅에 묻혔다.


출처 :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페리 앤더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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