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에 한 집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섯 누이. 그리고 그 가운데 사내아이 하나.
6녀 1남. 다섯째. 3대 독자.
귀한 외아들이었다.
어머니의 이름은 유정길. 마흔일곱이었다.
여섯 딸을 낳고 아들 하나를 얻었다.
아이의 이름은 전한승.
수송국민학교 6학년 1반.
산수를 잘했다. 달걀을 좋아했다. 개구쟁이였지만 점잖은 데가 있었다.
여섯 누이의 하나뿐인 남동생.
1960년 4월 14일. 생일이었다. 열세 살이 되었다.
누이들이 둘러앉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상을 차렸다.
닷새가 지났다.
1960년 4월 19일.
수업이 끝났다. 담임 선생께 꾸벅 절을 했다.
"선생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공덕동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세종로 사거리.
전차 정류장에서 친구를 놓쳤다. 거리에 어른들이 많았다. 아카데미극장 옆에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박수를 쳤다.
오후 네 시 삼십 분.
총성이 울렸다.
얼굴과 머리에 총탄이 박혔다. 아스팔트 위에 피가 고였다. 군중은 흩어지고, 소년만 남았다.
오후 다섯 시에 숨을 거두었다.
책가방은 아카데미극장 옆에 그대로 있었다.
다음 날 오후 세 시. 꽃샘바람이 불었다.
망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여섯 누이. 작은 관 하나.
3대 독자가 묻혔다.
남영동 집은 그해 불탔다.
이웃 가구점의 불이었다. 보상은 없었다.
부모는 파주로 갔다. 단칸 셋방. 하루벌이.
저녁 밥상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듬해 봄, 수송국민학교 졸업식.
833명의 아이들 앞에 영정 하나가 놓였다.
이름이 불렸다. "전한승."
대답은 없었다.
어머니날.
그해 아들을 잃은 어머니 마흔한 명이 표창을 받았다. 유정길이 대표로 답사를 했다.
"저희들의 힘이 약하였기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말이었다.
나라는 건국포장을 주었다.
묘를 수유리로 옮겼다.
1묘역 195배위.
명예는 회복되었다. 회복될 수 있는 것만.
2020년 4월 19일.
대통령이 묘 앞에 꽃을 놓았다.
무연고 희생자였다.
3대 독자였던 아이. 여섯 누이의 하나뿐인 남동생.
연이 끊긴 것이 아니라, 시간에 닳은 것이다.
묘비에는 네 줄이 새겨져 있다.
1948년 4월 14일 서울 출생 수송국민학교 6년 재학 1960년 4월 19일 광화문에서 시위 중 총상 사망
시위에 간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박수를 치고 있었다.
열세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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