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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7일 목요일

5월 3일, 금지를 금지하라

 

영광과 권태 사이, 전후 프랑스 🇫🇷

1945년의 프랑스는 승전국이었지만 동시에 패전국이었다. 나치에 점령당했던 4년의 기억, 비시 정권의 협력, 레지스탕스라는 신화. 이 모순된 유산 위에서 제4공화국이 출범했다. 그러나 정부는 평균 6개월마다 무너졌고, 의회는 분열했으며, 식민지에서는 피가 흘렀다. 인도차이나에서 패배했고(1954년 디엔비엔푸), 곧이어 알제리가 불타올랐다.

경제는 달랐다. 이른바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이 시작됐다. 마셜 플랜의 자금, 국가 주도의 산업화, 베이비붐. 르노 4CV가 거리를 채우고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가정에 들어왔다. 농촌 인구는 도시로 쏟아졌고, 대학생 수는 1950년 약 14만 명에서 1968년 60만 명을 넘어섰다.

드골의 귀환과 "위대한 프랑스" ⚜️

1958년, 알제리 위기로 제4공화국이 붕괴 직전에 몰리자 드골이 돌아왔다. 그는 강력한 대통령제를 핵심으로 한 제5공화국 헌법을 만들었고, 이듬해 대통령에 올랐다.

드골의 비전은 분명했다. La grandeur de la France. 위대한 프랑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독자 노선을 걷는 강대국. 1960년 사하라에서 첫 핵실험을 했고, 1966년 NATO 통합군사령부에서 탈퇴했다. 1964년에는 서방 진영 가운데 이례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다. 프랑(franc)은 강해졌고, 콩코드 여객기 개발이 시작됐다.

겉으로는 영광스러웠다. 그러나 그 영광은 권위주의적이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사실상 국가 통제 아래 있었고, 드골은 78세의 노인이었으며, 그가 호명하는 "프랑스"는 점점 더 젊은 세대의 감각과 멀어졌다.

알제리, 모두가 외면한 모순 🩸

알제리 전쟁(1954-1962)은 프랑스 사회의 가장 깊은 상처였다. 100년 넘게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 본토의 일부로 간주된 땅. 그곳에서 독립 전쟁이 벌어지자 기성 정치권은 모순 속을 헤맸다.

좌파 사회당 정부는 진압을 강화했다. 우파는 알제리 사수를 외쳤다. 드골은 처음에 "Je vous ai compris"(나는 여러분을 이해했다)며 식민지 정착민들에게 손을 내미는 듯했지만, 결국 1962년 에비앙 협정으로 알제리 독립을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OAS(비밀군사조직)는 드골 암살을 시도했고, 파리 한복판에서는 1961년 10월 알제리계 시위대가 경찰에 살해되어 센강에 던져진 사건까지 벌어졌다.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힌 학살이었다.

요점은 이거다. 기성 정치는 고문을 묵인했고, 식민 지배의 종말을 직시하지 못했으며, 자유·평등·박애를 외치면서 파리 시민이 강에 떠오르는 광경을 외면했다. 1968년에 스무 살이 된 세대는 바로 그 모순을 보며 자랐다. ⚖️

낭테르의 기숙사, 사소해 보였던 도화선 🚪

1964년, 파리 외곽의 황량한 부지에 낭테르 대학이 세워졌다. 소르본의 과밀을 해소하기 위한 위성 캠퍼스. 그러나 현실은 처참했다. 빈민가(bidonville) 옆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 부족한 시설,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들어찬 비좁은 공간.

그리고 기숙사 규정이 있었다. 남학생은 여학생 기숙사에 출입할 수 없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21세 미만은 부모 동의 없이 이성을 방에 들일 수 없었다.

1967년 3월, 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를 점거했다. 1968년 1월, 청년체육부 장관 프랑수아 미소프(François Missoffe)가 새 수영장 개장식에 참석했다. 한 청년이 다가가 따져 물었다. "장관님이 쓰신 청년백서 600쪽을 읽었는데, 청년의 성 문제에 대한 언급이 한 줄도 없습니다." 미소프는 비꼬듯 답했다. "그런 문제가 있으면 수영장에 뛰어들게." 청년이 받아쳤다. "그게 바로 파시즘 시대 청년 정책이지요."

그 청년이 다니엘 콘-방디였다. 별명은 "붉은 다니"(Dany le Rouge). 🔴

기숙사 규정은 작은 문제였지만 동시에 모든 것의 축약이었다. 권위주의, 가부장제, 청년의 몸과 욕망에 대한 통제, 어른들이 만든 세계의 위선. 3월 22일, 콘-방디를 비롯한 학생들이 낭테르 본관 행정동을 점거했다. *"3월 22일 운동"*이 탄생했다.

1968년 5월 3일 오늘,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

대학 당국은 4월 말 콘-방디를 비롯한 활동가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5월 2일, 낭테르 학장은 캠퍼스를 폐쇄했다. 학생들은 소르본으로 향했다.

5월 3일 토요일 오후, 소르본 안뜰에 약 500명이 모였다. 토론, 연설, 격앙된 분위기. 학장은 경찰을 불렀다. 그리고 여기서 결정적 실수가 벌어졌다. 800년 가까이 경찰은 소르본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대학 자치의 불문율이 깨진 것이다. 진압 경찰(CRS)이 안뜰로 진입해 학생들을 호송차에 실었다.

라탱 지구의 다른 학생들이 소식을 듣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동지들을 풀어줘라!" 자갈이 날아갔고 최루탄이 터졌다. 그날 밤만 수백 명이 체포됐고, 소르본은 폐쇄됐다.

벽에는 곧 새 글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Il est interdit d'interdire.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Sous les pavés, la plage. 자갈 아래에 해변이 있다.

Soyez réalistes, demandez l'impossible. 현실주의자가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이 문장들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영광의 30년이 만든 풍요, 드골이 외친 위대한 프랑스, 알제리에 대한 침묵, 낭테르의 기숙사 규정—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거부하는 선언이었다. ✊

자갈을 뜯어내자 그 아래는 모래였다. 도시의 단단한 표면 아래 해변이 있다는 그 문장은, 억압된 질서 아래 다른 가능성이 잠들어 있다는 뜻이었다. 5월의 프랑스는 그 해변을 잠시 보았다.

출처 : 진격의 10년, 1960년대  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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