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머니의 삶
🕊️ 앤 리브스 자비스. 1832년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태어난 한 여성.
그녀는 13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중 9명이 어른이 되기 전에 죽었다. 디프테리아, 홍역, 장티푸스. 19세기 미국의 위생 상태는 그만큼 참혹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택한 길은 슬픔에 잠기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어머니들을 구하는 일이었다.
🏥 1858년, 앤은 "어머니의 날 작업 클럽(Mothers' Day Work Clubs)"을 조직했다. 우유를 검사하고, 식수를 정화하고, 가난한 가정에 약을 보냈다. 영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풀뿌리 운동이었다.
⚔️ 남북전쟁이 터지자 그녀는 부상병을 돌봤다. 북군이든 남군이든 가리지 않았다. 누구의 아들이든 어머니에게는 똑같은 아들이니까.
🤝 전쟁이 끝난 뒤에는 더 어려운 일을 했다. "어머니의 우정의 날"을 만들어 적이었던 양측 군인과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증오를 봉합하는 일.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앤은 늘 말했다. "언젠가 누군가가 어머니의 헌신을 기리는 날을 만들어 주기를."
딸의 약속
👧 그 말을 가슴에 새긴 사람이 있었다. 딸 안나 자비스.
1905년 5월 9일 오늘,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안나는 결혼하지 않았다. 아이도 낳지 않았다. 평생을 어머니의 꿈 하나에 바쳤다.
✉️ 그녀는 편지를 썼다. 상원의원에게, 대통령에게, 신문사에, 교회에. 수천 통. 직접 자비를 들여 우표를 사고 봉투를 붙였다.
⛪ 1908년 5월 10일. 웨스트버지니아 그래프턴의 작은 감리교회. 최초의 공식 어머니날 예배가 열렸다. 안나는 어머니가 가장 사랑했던 꽃, 흰 카네이션 500송이를 참석자들에게 나눠 주었다.
🌸 여기서 전통 하나가 태어났다.
— 어머니가 살아계신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 어머니를 여읜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붉은색은 살아있는 어머니의 사랑. 흰색은 떠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한 송이의 꽃이 그 사람의 어머니가 이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를 말해 주었다.
🇺🇸 그리고 1914년 5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서명했다.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국가 공식 어머니날로 선포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5월 9일. 그 날짜를 품은 둘째 주 일요일이 클라이맥스로 박혔다. 딸이 어머니에게 바친 9년간의 약속이 끝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분노
🔥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안나는 자신이 만든 기념일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 꽃집들이 카네이션 가격을 폭등시켰다. 카드 회사들은 "엄마 사랑해요"라고 인쇄된 카드를 팔아 떼돈을 벌었다. 사탕 회사, 식당, 백화점. 모두가 어머니날로 장사를 했다.
안나는 격분했다.
"이건 어머니를 기리는 날이 아니다. 어머니를 팔아먹는 날이다."
🗯️ 그녀는 시위에 나섰다. 어머니날 카네이션 판매 행사장에 난입해 경찰에 체포됐다. 카드는 "게으른 자들이 직접 편지 쓰기 싫어서 사는 것"이라고 욕했다. 사탕 상자는 "엄마에게 줘 놓고 자기가 먹는 것"이라고 비웃었다.
⚖️ 그녀는 소송을 걸었다. 어머니날을 상업화한 모든 단체를 향해. 미국 화훼협회는 그녀의 최대의 적이 되었다.
🏚️ 어머니의 유산도, 자신의 전 재산도 모두 이 싸움에 쏟아부었다.
마지막
👁️ 1943년. 안나는 시력을 잃었다. 청력도 잃었다. 빈털터리가 된 그녀는 필라델피아의 한 요양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서 역사상 가장 잔인한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 누가 그 요양원 비용을 댔는가.
미국 화훼협회. 그녀가 평생 싸웠던, 어머니날을 카네이션 장사판으로 만들었다고 저주했던 바로 그 단체였다.
그들은 안나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의 돈으로 살고 있는지 모른 채 그곳에 머물렀다.
⚰️ 1948년 11월 24일. 안나 자비스는 84세로 숨을 거뒀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 어머니가 되지 못한 여자. 평생을 어머니날에 바쳤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어머니날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여자.
🥀 그녀의 장례식에 보낸 헌화는 화훼협회가 했다.
흰 카네이션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