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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2일 수요일

4월 22일,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화학전

 

1870년 6월, 클라라 이머바르Clara Immerwahr, 1870~1915는 프로이센 브로츨라프 근교에서 유대계 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독일 대학이 여성의 정식 입학을 허용하지 않던 시대였다. 그녀는 청강생 자격으로 브로츨라프 대학에 들어가, 수업을 듣기 위해 교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별 허락을 받아야 했다. 화학을 택했다.

1900년, 물리화학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평점은 magna cum laude였다. 브로츠와프 대학이 배출한 최초의 여성 박사였고, 독일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었다. 학위 수여식에서 그녀는 "그 누구의 여종도, 심지어 학문의 여종도 되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듬해 프리츠 하버와 결혼했다. 학생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고, 하버는 당시 카를스루에 공대의 떠오르는 화학자였다. 곧 아들 헤르만이 태어났다. 그때부터 그녀의 연구는 멈췄다. 당시 독일 중산층 기혼 여성에게 허용된 학문은 남편의 강연 원고를 다듬고 번역을 거드는 일뿐이었다. 스승 리하르트 아벡에게 보낸 편지에, 그녀는 자신의 삶이 "프리츠의 삶에 비하면 부끄러울 만큼 왜소한 조각으로 쪼그라들었다"고 적었다. 1911년 하버가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초대 소장이 되어 베를린 과학계의 중심으로 올라서자, 그녀의 자리는 더 좁아졌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버는 화학전 개발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평화로울 때 과학자는 세계에 속하지만, 전쟁 때는 조국에 속한다"고 말했다. 클라라는 남편의 연구를 과학의 왜곡이라 불렀다. 생명을 다루어야 할 학문을 죽음의 도구로 바꾸는 일이라고 했다. 부부 사이의 골은 이 시기에 메울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1915년 4월 22일 오늘 오후 5시, 벨기에 이프르(Ypres) 전선. 하버가 직접 현장에서 지휘한 염소가스 168톤이 연합군 진지를 향해 흘러갔다. 가스통 5,730개의 밸브가 열렸고, 황록색 구름이 바람을 타고 퍼졌다. 그날 저녁까지 약 천 명이 죽고 수천 명이 쓰러졌다. 오늘 이 공격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화학전으로 기록됐다. 

이 잔혹한 성공으로 하버는 대위로 진급했다.

5월 1일 밤, 그는 진급을 축하하는 만찬을 위해 베를린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부부는 격렬하게 다퉜다. 클라라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음 날 동이 트기 전, 그녀는 정원으로 내려가 남편의 군용 권총으로 자기 가슴을 쏘았다. 총성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 나온 사람은 열세 살 아들 헤르만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팔 안에서 숨을 거뒀다. 마흔넷이었다.

유서는 남지 않았다. 하버가 직접 없앴다는 말도 있다. 그는 장례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이틀 뒤 동부전선으로 떠났다. 러시아군을 상대로 한 다음 가스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떠난 뒤의 이야기는 천천히, 오래 이어졌다.

1918년,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법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화학전 전력 때문에 수상은 국제적 논란을 낳았다. 1933년, 나치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독일에서 쫓아냈다. 이듬해 그는 스위스 바젤의 호텔방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예순다섯이었다.

1946년, 아들 헤르만이 미국 망명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품에 안았던 그 아이였다. 1949년, 손녀 클레어 —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화학자 — 도 같은 길을 갔다.

하버의 연구소에서 파생된 기술로 만들어진 살충제 치클론 B가 훗날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쓰였다. 그 가스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하버의 친척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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