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 중세 카탈루냐에 하나의 전설이 있었다. 한 마을을 공포에 떨게 하던 용이 있었고, 사람들은 제비뽑기로 매일 한 명씩 용에게 바쳤다. 어느 날 공주가 뽑혔다. 공주가 용 앞으로 걸어가던 순간, 백마를 탄 기사 산 조르디가 나타나 용을 검으로 찔렀다. 쓰러진 용의 피에서 붉은 장미 덤불이 솟아났고, 기사는 그중 가장 붉은 한 송이를 꺾어 공주에게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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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카탈루냐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다. 산 조르디는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그의 축일에 연인끼리 장미를 주고받는 풍습이 자리 잡았다. 15세기부터 이어진 오래된 전통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날은 오직 🌹'장미의 날'이었다. 책은 없었다.
책의 날
책이 끼어든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1922년, 바르셀로나의 세르반테스 출판사 편집장이었던 비센테 클라벨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를 기리고 동시에 책 판매를 늘릴 '책의 날'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출발은 낭만이라기보다 상업이었다. 1926년 10월 7일, 당시 세르반테스의 생일로 알려진 날에 첫 '책의 날'이 열렸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의 같은 사망일
그러나 10월의 책의 날은 조용했다. 1931년, 서점 상인들이 날짜를 옮기자고 요청했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날, 4월 23일로. 두 거장이 1616년 같은 날짜에 숨을 거둔 역사적 우연이 상징성을 주었다. 사실 달력이 달라 실제 사망은 열흘쯤 차이가 났지만, 날짜의 일치만으로 충분히 극적이었다.
4월 23일 장미와 책의 축제
새 날짜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4월 23일은 이미 수백 년째 산 조르디의 장미 축제가 열리던 날이었다. 상인들의 실용적 결정이 오래된 전설과 맞부딪친 것이다. 두 축제는 저항 없이 녹아들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장미를 주고, 여자는 남자에게 책을 주는 새로운 관습이 생겨났다. 용의 피와 세르반테스의 죽음이 하루 안에 겹쳐졌다.
프랑코 독재 시절, 카탈루냐어로 된 책이 금지되던 때에도 이 전통은 살아남았다. 책과 장미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억압받는 언어와 문화의 상징이 됐다. 1995년, 유네스코는 이 카탈루냐의 축제에서 영감을 받아 4월 23일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지정했다. 한 지방의 풍습이 전 세계의 기념일로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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