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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3일 목요일

🧵 4월 24일, 콘크리트 아래의 열일곱 날― 라나 플라자, 그리고 레시마 베굼

 

🏭 1. 디나지푸르에서 다카로

레시마 베굼은 방글라데시 북부 디나지푸르(Dinajpur) 출신이었다. 다카에서 북쪽으로 약 270킬로미터 떨어진 농촌 지역이다. 19세 무렵 그녀는 다른 수많은 시골 여성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수도로 이주했다. 1980년 1.8백만 달러였던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은 2010년대 초 25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되었고, 약 400만 명의 노동자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중 80퍼센트가 여성이었다. 방글라데시는 미국과 유럽 의류 회사들에 점점 더 저렴한 생산 비용을 제공함으로써 이 성장을 가능케 했다. 노동력의 가격은 그 산업의 핵심 자산이었고, 디나지푸르의 가난한 가족들에게 다카행 버스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레시마는 사바르의 라나 플라자 2층, 팬텀 어패럴(Phantom Apparel) ― 일부 보도에는 뉴 웨이브 스타일(New Wave Style)로도 기록된 ― 의 봉제공으로 일했다. 직무는 스윙 오퍼레이터, 즉 재봉틀 앞에 앉아 정해진 부위를 반복해서 박는 일이었다.

2. 한 달 38달러

당시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의 법정 최저임금은 월 3,000타카, 약 38달러였다. 이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노예 노동에 가깝다"고 비판한 금액이었다. 입사 1년차에 해당하는 레시마의 실수령액도 이 언저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옷이 런던과 뉴욕의 매장에서 20파운드, 30달러에 팔렸다.

근무는 통상 오전 8시에 시작해 저녁까지 이어졌고, 납기에 임박하면 14시간 노동이 일상이었다. 생활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자들은 정기적으로 14시간씩 일했다. 한 달을 꼬박 일해도 다카 외곽 한 칸짜리 셋방의 월세와 식비를 빼면 고향으로 부칠 돈이 거의 남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의 30퍼센트 이상이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는다. 즉 38달러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셋 중 하나였다는 의미다.

이 가격 구조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쪽 끝에 H&M, Walmart, Mango, Benetton, Primark, JC Penney, Joe Fresh가 있고 반대쪽 끝에 디나지푸르 출신 19세 여성이 있는, 길고 정교한 공급망의 논리적 결과였다. 브랜드는 단가를 내리고, 단가는 공장주를 압박하고, 공장주는 임금과 안전을 깎았다.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정부는 생산 비용을 낮추는 데 골몰했다. 일종의 바닥을 향한 경주였다.

3. 8층, 다섯 개 공장, 5천 명

라나 플라자는 8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본래 상업용으로 허가받은 구조였고, 부지 자체가 매립된 연못 자리였다. 건물주 소헬 라나는 정부 여당 청년조직과 연결된 지방 정치인이었다. 그는 허가받지 않은 층을 증축했고, 무거운 산업용 재봉기와 발전기를 설계 하중을 한참 초과해 들여놓았다.

내부에는 다섯 개의 의류 공장 ― Phantom Apparel, New Wave Style, New Wave Bottoms, Ether Tex, Canton Tech Apparel ― 이 입주해 있었다. 1층에는 BRAC 은행과 상점들이 있었고, 위층 다섯 개 공장에서 약 5천 명이 일했다. 그들이 봉제한 라벨에는 세계의 거의 모든 패스트패션 브랜드 이름이 박혀 있었다. 발주서, 가격표, 납기 ― 이 세 가지가 5천 명의 하루를 지배했다.

4. 4월 23일, 균열

붕괴 전날인 화요일, 3층 기둥과 벽에 깊은 균열이 발견되었다. 콘크리트가 갈라지는 소리는 위층으로도 전해졌다. 노동자 일부는 작업을 멈추고 거리로 빠져나왔다. 경찰과 산업경찰이 출동했고, 같은 건물에 있던 BRAC 은행과 상점들은 그날로 영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의류 공장 다섯 곳은 영업을 멈추지 않았다. 건물주 소헬 라나는 저녁 기자들 앞에서 균열은 단순한 회벽 손상이라고 말했다. 공장주들은 다음 날 정상 출근을 통보했다. 출근하지 않으면 한 달 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통보가 함께 갔다. 38달러를 지키기 위해 5천 명은 다음 날 아침 다시 그 건물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소헬 라나는 전날 균열이 나타났음에도 4월 24일 노동자들에게 출근을 강요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납기가 임박해 있었다. 발주는 멀리 유럽과 북미의 사무실에서 이메일로 도착했다.

5. 4월 24일, 8시 57분

수요일 아침, 레시마는 평소처럼 2층 라인에 앉았다. 작업이 시작된 직후 정전이 일어났고, 옥상의 대형 디젤 발전기가 가동되었다. 진동이 건물 전체로 퍼졌다. 8시 57분, 라나 플라자는 무너졌다.

붕괴는 90초가 걸리지 않았다. 옥상의 발전기 무게와 8개 층의 자중이 약화된 기둥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위층이 아래층 위로 접혀 내렸고, 콘크리트 슬래브 사이로 사람과 재봉틀이 함께 쌓였다.

레시마는 무너지기 시작하는 건물에서 계단을 향해 달렸다. 그녀가 닿은 곳은 지하층이었다. 건물 하중이 모두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지만, 그녀는 무슬림 기도실 근처의 넓은 공간에 갇히게 되었고 그 공간이 그녀를 살렸다. 콘크리트 두 장이 서로 어긋난 채 멈춘,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틈이었다. 머리카락이 잔해 아래에 끼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물체를 이용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자신을 풀어냈다.

밖에서는 구조 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6. 열일곱 날

처음 며칠 동안 레시마는 같은 공간에 함께 있던 동료 세 명과 말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료들은 차례로 침묵했다. 그녀는 죽은 동료들의 도시락 가방에서 마른 음식 부스러기를 모았다. 물은 무너진 기도실 쪽에서 흘러내려 고인 것을 마셨다. 화재 진압 때 살수된 물과 빗물이 잔해 사이로 스며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쪽에서는 시간의 단위가 바뀌고 있었다. 4월 28일 마지막 생존자였던 샤히나 악터(Shahina Akter)가 구조 도중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뒤, 작업은 생존자 수색에서 시신 수습으로 전환되었다. 굴착기와 불도저가 잔해를 들어내기 시작했고, 정부는 5월 초 사실상 생존자 수색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매일 수십 명씩 늘어났다.

레시마는 위쪽 소음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줄고 기계 소리가 늘었다. 그녀는 막대와 철근을 잡고 잔해를 두드렸다. "며칠째 구조대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그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막대와 철봉으로 잔해를 계속 쳤어요." 음식이 먼저 떨어졌고, 마지막 이틀은 물도 거의 없었다.

5월 10일 오후, 한 구조 작업자가 잔해 위에서 철근을 자르고 있었다. "갑자기 구멍에서 은색 막대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어요. 들여다봤더니 누군가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보였습니다." 약 40분간의 작업 끝에 레시마가 잔해 밖으로 나왔다. 보라색 옷에 분홍색 스카프 차림이었다. 큰 외상은 없었고 의식은 또렷했다.

붕괴 후 17일째였다. 마지막 생존자가 발견된 지 13일 만이었다. 그녀의 구조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헬기로 병원에 도착했고, 디나지푸르에서 어머니와 언니가 수도로 향했다. "우리는 그녀를 다시 살아서 볼 모든 희망을 잃었을 때 그녀를 되찾았다." 언니 아스마는 한 방송에서 그렇게 말했다.

⚖️ 7. 잔해 위에서의 회계

최종 사망자는 1,134명이었다. 산업 재해 사망자 수로는 1984년 인도 보팔 가스 누출 이후 세계 최악의 규모였다. 부상자 약 2,500명 중 다수가 사지 절단이나 영구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세계는 이 숫자에 반응했다. 사고 직후, 유럽 브랜드 200여 곳이 서명한 방글라데시 화재·건물 안전 협약(Accord on Fire and Building Safety in Bangladesh) 과 미국 브랜드 중심의 Alliance for Bangladesh Worker Safety가 출범했다. 국제적 감시가 강화되면서 작업 환경은 0.80 표준편차만큼 개선되었고, 임금은 약 10퍼센트 상승했다. Accord 점검은 1,600여 개 공장에 적용되었고, 2021년에는 국제 협약으로 갱신되어 파키스탄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임금은 더디게 움직였다. 사고 직후 정부는 최저임금을 월 3,000타카에서 5,300타카로 인상했다. 그다음 인상은 5년 뒤인 2018년에 이루어져 8,000타카(약 95달러)가 되었다. 2023년 11월 정부는 임금을 다시 12,500타카(약 113달러)로 56퍼센트 인상했지만, 노동조합은 이를 "잔인한 농담"이라 불렀다. 노조가 요구한 23,000타카는 생활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으나, 결정된 인상폭은 그 절반 수준이었다. 브랜드들은 침묵했다. 그해 임금 시위 도중 노동자 4명이 경찰 발포로 사망했다.

피해 보상도 미흡했다. ILO 협약 121호에 따라 산정된 총 보상금은 3,000만 달러였다. 한 사람의 죽음 또는 평생 장애에 대한 가격이 평균 1만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그조차 강제 분담이 아닌 자발적 기부 방식으로 모금되었고, 목표액에 도달하기까지 26개월이 걸렸다. 잔해에서 라벨이 발견된 15개 브랜드는 끝내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베네통은 100만 명의 시민 서명이 모인 뒤에야 일부를 분담했고, 월마트는 100만 달러를 내는 데 그쳤다. 가장 많이 분담한 곳은 영국 Primark의 1,400만 달러였다.

응급 의료는 무상이었으나 거기서 끝이었다. 만성 통증, 절단된 사지, 손상된 척추, 깨진 두개골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부상자들의 평생 의료비는 대부분 사적으로 지출되었다. 사고 6년 뒤 한 생존자는 다리 절단을 권고받은 상태에서 매달 약값으로 5,000타카를 쓰며 집과 모든 재산을 팔았다고 진술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부상 생존자 다수는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추모식장에서 보상과 치료를 요구하고 있다. 한 노동운동가의 표현을 빌리면, 노동자들이 받은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선이었다.

라나 플라자 이후에도 방글라데시의 글로벌 의류 시장 점유율은 줄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의 글로벌 의류 수출 점유율은 2010년 4.2퍼센트에서 2018년 6.4퍼센트로 오히려 상승했다. 단가 압박은 지속되었고, 정식 점검을 받지 않는 하청·재하청 단계의 위험은 이전과 같은 모양으로 잔존했다.

건물주 소헬 라나는 도주 4일 만에 인도 국경에서 체포되었다. 부패 혐의와 건축법 위반 혐의로 형이 선고되었으나, 1,134명의 사망에 대한 살인 혐의 재판은 13년이 지난 2026년 현재까지도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피고인은 40명을 넘는다.

8. 디나지푸르 출신 19세, 그 이후

레시마는 다카의 5성급 호텔 웨스틴 다카에 하우스키핑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다시는 의류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이후 결혼해 자녀를 두었다.

그녀는 사고 이후 수년간 추모 행사와 일부 인터뷰에 응했지만, 점차 공개적인 자리를 피했다. 어둠과 폐쇄된 공간에 대한 공포가 지속되었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콘크리트 두 장 사이의 17일은 그녀의 신체에서 빠져나왔지만, 다른 방식으로 그녀 안에 남았다.

라나 플라자가 있던 자리는 현재 빈 공터로 남아 있다. 정부의 추모 공원 조성 계획은 토지 분쟁과 예산 문제로 13년째 지연되고 있다. 부지 한쪽에 두 노동자가 서로를 끌어안은 형상의 작은 조각상이 서 있다. 받침에는 "Never Again"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같은 라벨이 부착된 셔츠가 오늘도 디나지푸르 출신 어떤 19세의 손을 거쳐 컨테이너에 실린다. 단가는 여전히 결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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