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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8일 수요일

🔒 6월 25일,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 1950년

🌧️ 새벽 4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 7만 5천 명이 38선을 넘었다. 탱크가 앞섰다.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됐다.

38선은 한국인이 그은 선이 아니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미국의 두 장교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보고 30분 만에 38도선을 그었다.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일본군의 항복을 받는 경계였다. 조선인은 이 결정에 없었다. 임시 분단이었으나, 영구가 됐다.

⚔️ 3년

미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참전했다. 소련이 당시 안보리를 보이콧 중이었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21개국이 참전했다.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혔고,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밀어붙이자 중국이 개입했다. 전선은 다시 38선 부근으로 밀렸다. 2년간의 소모전이 이어졌다. 포로 송환 문제 하나로 협상이 2년을 끌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서명됐다.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군·중국군이 서명했다. 한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이승만이 무력 통일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망자는 최소 250만 명이었다.

🔒 정전

정전협정의 첫 문장은 이렇다. 적대행위의 완전한 중지를, 최종적인 평화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보장하기 위해.

72년이 지났다. 최종적인 평화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다. 싸움을 멈춘 것이다. 법적으로 한국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DMZ는 평시 국경이 아니라 전시 완충지대다. 주한미군 2만 8천 명은 평화 조약이 아니라 전시 권한으로 주둔한다.

🕊️ 종전 논쟁

종전을 먼저 선언하고 비핵화를 이끌어내자는 쪽과, 비핵화 없이 종전선언은 위험한 양보라는 쪽이 맞섰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평화협정을 요구해 왔다. 목적은 주한미군 철수였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6자회담 공동성명, 2018년 싱가포르 공동선언. 합의가 있을 때마다 북한은 핵 개발을 계속했다.

2018년 문재인과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선언했다. 그해 말까지 종전을 선언하기로 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이 결렬됐다. 모든 것이 멈췄다.

2024년 김정은은 한국을 주적으로 헌법에 명시했다. 2025년 노동당 대회에서 남측과의 모든 대화를 거부했다. 2026년 한국 정부는 다시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지금

합의문들은 종이 위에서 사라졌다.

1953년 정전협정 서명국들은 평화 회의를 석 달 안에 열기로 했다. 그 회의는 열렸으나 실패했다. 그 이후의 모든 합의도 실패했다. 72년이 지났다.

DMZ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국경이다. 38도선을 30분 만에 그은 두 장교 중 한 명인 딘 러스크는 훗날 국무장관이 됐다. 그 선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2026년 7월 3일 금요일

⚔️ 6월 24일,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 1932년, 방콕

🏛️ 선언

1932년 6월 24일 아침, 방콕의 왕립 광장에서 한 장교가 탱크 위에 올라 선언문을 낭독했다. 카나 랏사돈, 즉 민중당이 700년 절대왕정을 끝냈다. 국왕 프라차티폭은 후아힌의 별궁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사흘 뒤, 헌법이 공포되었다. 민중당 지도자 프리디 파놈용이 미리 써둔 초안이었다. 헌법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이 땅의 최고 권력은 전 국민에게 있다.

국왕이 방콕으로 돌아와 민중당 대표들을 접견했다. 시암 문화에서 왕은 신하가 예를 갖출 때 앉아 있는 것이 관례다. 국왕은 일어섰다. "나는 카나 랏사돈을 경하하여 일어선다." 700년 왕정이 그렇게 끝났다.

⚔️ 쿠데타의 시작

혁명이 성공하고 1년이 지나지 않아, 같은 군대가 민선 총리를 몰아냈다. 1933년의 일이었다. 혁명의 선례가 쿠데타의 선례가 되었다.

1938년, 피불송크람이 정적들을 제거하고 파시즘 노선을 택해 2차대전에서 일본 편에 섰다. 1947년, 군이 다시 선출 정부를 무너뜨렸다. 1951년, 피불이 자기 손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1932년 헌법을 복원했다. 1957년, 사릿 타나랏이 자기 상관을 몰아냈다. 1958년, 사릿이 두 번째 쿠데타로 독재 체제를 완성했다.

군은 1947년부터 1973년까지 26년을 통치했다.

🩸 1973년과 1976년

1973년 10월,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수십만 명이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군이 발포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자, 군은 결국 권력을 내놓았다. 태국 최초의 진정한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3년이었다.

1976년 10월 6일, 군이 학생 시위대를 학살했다. 공식 사망자는 46명이었다. 쿠데타가 뒤따랐고, 민주주의는 다시 지워졌다.

🔄 반복

1977년, 1991년, 2006년, 2014년. 쿠데타가 이어졌다. 방식은 거의 같았다. 선거로 집권한 정치인이 방콕 엘리트의 이해와 충돌하면, 군이 개입했다. 2006년에는 탁신 친나왓 총리가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있는 사이 쿠데타가 일어났다. 2014년에는 그의 여동생 잉락이 같은 방식으로 쫓겨났다.

어느 쿠데타 지도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성공하면 총리가 되었고, 실패해도 망명이나 사면으로 끝났다. 미국은 냉전 내내 공산주의를 막는다는 이유로 태국 군사 정권을 지원했다.

📜 헌법

1932년 이후 태국은 헌법을 20번 바꿨다. 쿠데타가 일어날 때마다 헌법이 폐기되고 새 헌법이 만들어졌다. 헌법이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헌법을 만들었다.

🪙 사라진 동판

1932년 혁명이 선포된 왕립 광장 바닥에는 기념 동판이 박혀 있었다. 그날의 선언을 새긴 동판이었다. 어느 날 동판이 사라졌다. 누가 가져갔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 지금

2023년 5월, 비교적 공정한 선거가 치러졌다. 2025년 현재,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으로 또다시 쿠데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32년 6월 24일 공포된 헌법의 첫 문장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이 땅의 최고 권력은 전 국민에게 있다.

🌍 6월 30일, 콩고 독립 선언식에서의 연설

🌍  배경 — 레오폴드의 콩고 콩고는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식민 지배를 받은 곳 중 하나였다.  1885년부터 1908년까지,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소유지였다. 나라가 아니라 왕 한 사람의 재산이었다. 레오폴드는 고무를 원했다. 고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