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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3일 금요일

⚔️ 6월 24일,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 1932년, 방콕

🏛️ 선언

1932년 6월 24일 아침, 방콕의 왕립 광장에서 한 장교가 탱크 위에 올라 선언문을 낭독했다. 카나 랏사돈, 즉 민중당이 700년 절대왕정을 끝냈다. 국왕 프라차티폭은 후아힌의 별궁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사흘 뒤, 헌법이 공포되었다. 민중당 지도자 프리디 파놈용이 미리 써둔 초안이었다. 헌법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이 땅의 최고 권력은 전 국민에게 있다.

국왕이 방콕으로 돌아와 민중당 대표들을 접견했다. 시암 문화에서 왕은 신하가 예를 갖출 때 앉아 있는 것이 관례다. 국왕은 일어섰다. "나는 카나 랏사돈을 경하하여 일어선다." 700년 왕정이 그렇게 끝났다.

⚔️ 쿠데타의 시작

혁명이 성공하고 1년이 지나지 않아, 같은 군대가 민선 총리를 몰아냈다. 1933년의 일이었다. 혁명의 선례가 쿠데타의 선례가 되었다.

1938년, 피불송크람이 정적들을 제거하고 파시즘 노선을 택해 2차대전에서 일본 편에 섰다. 1947년, 군이 다시 선출 정부를 무너뜨렸다. 1951년, 피불이 자기 손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1932년 헌법을 복원했다. 1957년, 사릿 타나랏이 자기 상관을 몰아냈다. 1958년, 사릿이 두 번째 쿠데타로 독재 체제를 완성했다.

군은 1947년부터 1973년까지 26년을 통치했다.

🩸 1973년과 1976년

1973년 10월,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수십만 명이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군이 발포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자, 군은 결국 권력을 내놓았다. 태국 최초의 진정한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3년이었다.

1976년 10월 6일, 군이 학생 시위대를 학살했다. 공식 사망자는 46명이었다. 쿠데타가 뒤따랐고, 민주주의는 다시 지워졌다.

🔄 반복

1977년, 1991년, 2006년, 2014년. 쿠데타가 이어졌다. 방식은 거의 같았다. 선거로 집권한 정치인이 방콕 엘리트의 이해와 충돌하면, 군이 개입했다. 2006년에는 탁신 친나왓 총리가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있는 사이 쿠데타가 일어났다. 2014년에는 그의 여동생 잉락이 같은 방식으로 쫓겨났다.

어느 쿠데타 지도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성공하면 총리가 되었고, 실패해도 망명이나 사면으로 끝났다. 미국은 냉전 내내 공산주의를 막는다는 이유로 태국 군사 정권을 지원했다.

📜 헌법

1932년 이후 태국은 헌법을 20번 바꿨다. 쿠데타가 일어날 때마다 헌법이 폐기되고 새 헌법이 만들어졌다. 헌법이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헌법을 만들었다.

🪙 사라진 동판

1932년 혁명이 선포된 왕립 광장 바닥에는 기념 동판이 박혀 있었다. 그날의 선언을 새긴 동판이었다. 어느 날 동판이 사라졌다. 누가 가져갔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 지금

2023년 5월, 비교적 공정한 선거가 치러졌다. 2025년 현재,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으로 또다시 쿠데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32년 6월 24일 공포된 헌법의 첫 문장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이 땅의 최고 권력은 전 국민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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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4일,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 1932년, 방콕

🏛️ 선언 1932년 6월 24일 아침, 방콕의 왕립 광장에서 한 장교가 탱크 위에 올라 선언문을 낭독했다. 카나 랏사돈, 즉 민중당이 700년 절대왕정을 끝냈다. 국왕 프라차티폭은 후아힌의 별궁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사흘 뒤, 헌법이 공포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