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 금요일

1월 24일 윈스턴 처칠경 사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즉위 후 첫번째 가터 훈장의 주인공으로 Mr.처칠을 지목했다.

Mr.처칠은 공식적으로 윈스턴 처칠 경 Sir Winston Churchill이 됐다.

훈장의 수여 명분은 그의 '국가에 대한 위대한 헌신'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1937년 '팔레스타인 왕립위원회'에서 유대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를 따로 만드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강력히 반대했고, 영국의 위임통치를 주장했다.

훈장은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위대한 헌신'의 결과였다.


    1965년 1월 24일 오늘, 윈스턴 처칠이 사망했다.

평소 '아버지와 같은 날 죽고 싶다'고 말했는데 정확히 같은 날 사망했다.

그는 아버지보다 정확히 2배 더 살았다. 향년 90세였다.

팔레스타인은 정확히 그의 논리 속에 아직도 신음하고 있다.



1월 23일 최초의 여성의사 탄생

     1821년생인 엘리자베스 블랙웰 Elizabeth Blackwell은 의대를 지원했으나, 모든 의과대학은 여자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뉴욕의 제네바 의대 학장은 남학생들의 의견을 묻기로 하고 학생들에게 투표를 맡겼다.

남학생들은 하나의 장난이나 이벤트로 여기고 '찬성'에 표를 던졌다.

그녀는 입학했지만, 주위의 조롱과 따돌림은 물론이고 해부학등 일부 수업에서는 참관조차 거부 당했다.


    1849년 1월 23일 오늘, 그녀는 세계 여성 최초의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수석이었다.

학장은 그녀에게 학위기를 건네면서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최초의 여성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으나, 편견은 여전했다.

외과 치료 중 왼쪽 눈이 감염되어 안구를 적출했다.

회복대에 누운 그녀 곁엔 절친한 친구 나이팅게일 Nightingale이 지켜줬다.



1월 22일 여왕 빅토리아 서거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의 여왕이자,

신앙의 수호자이시며,

하노버의 공주님이자,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의 여공작이시고,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비이자,

작센의 왕자비이시다.

인도의 여황제이시며,

조지 4세 왕립 기사단장이고,

가터 기사단장,

엉겅퀴 기사단장,

성 패트릭 기사단장,

바스 기사단장,

세인트 마이클 앤드 세인트 조지 기사단장,

영국령 인도 기사단장,

인도 메리트 기사단장,

인도성(星) 기사단장,

로열 빅토리아·앨버트 기사단장,

인도 제국 기사단장,

인도 왕좌 기사단장,

무공 기사단장이시고,

빅토리아 왕립 기사단장이시기도 하다.

독일 제국 빌헬름 2세 황제의 외할머니이시며,

러시아 제국 로마로프 가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외할머니되시고,

윈저 가문 조지 5세의 친할머니이시며,

스페인 브르봉 가문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의 외할머니이시고,

노르웨이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모드 왕비의 친할머니이시며,

루마니아 호엔촐레른 가문의 마리아 왕비의 친할머니이시고,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소피아 왕비의 외할머니 되시는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Alexandrina Victoria 여왕 폐하께서,


    1901년 1월 22일 오늘, 서거했다. 향년 81세.

오늘 장례식에 외손자와 아들, 손자들이 나란히 섰다.
그후, 그들은 서로의 나라를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1월 21일 블라디미르 레닌 사망

 

    러시아 레닌 혁명은 대중 봉기의 결과가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선전하는 구호 뒤에 숨어서 정권을 잡은 소수당이 강제로 부과하여 실현된 것이었다.

국가경영, 기업경영의 경험도 전무하면서 신속하게 국유화를 진행시켰고,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을 전체 인구 1%의 산업 노동자의 적으로 보았다.

레닌의 새 정권은 독재 정치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음이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레닌은 '독재란 권력이다. 그 어떠한 것도 그것을 제한할 수 없다.'라는 정의 아래 무제한의 폭력 정치를 이어갔다.

그 결과 소비에트 경제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재앙이 됐다.

러시아인들은 역사가 그들에게 맡긴 대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고 레닌의 새 정부를 비난했다.

레닌에게 그들은 적이었다. 그는 그 적들을 찾아냈다.

어제는 그 적이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체포되어 강제로 추방됐다.

오늘은 그 적이 농민이었다.

그들은 모든 곡물과 땅을 빼앗겼다.

내일이 오면 그 적은 교회가 되었다.

그들은 교회 재산을 빼앗았다.

이런 곡물과 재산은 기근을 줄이는 데 사용된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국가의 필요에 의해 충당되었다.


    1924년 1월 21일 오늘,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했다.


출처 : 공산주의의 역사, 리처드 파이프스 저



1월 20일 두려움속의 안네 프랑크와 오드리 헵번

 

    1929년 6월에 태어난 안네 프랑크가 그 좁은 집에서 공포의 시간을 보낼 때, 

같은 해 5월생인 또 다른 한 소녀도 배고픔과 두려움 속에서 지냈다. 둘은 고작 90km 떨어져 있었다.

그 소녀는 전쟁 후 살아남았다. 소녀는 출판된 '안네의 일기'를 한 줄 한 줄 외우다시피 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애는 실내에서만 지내고 나는 밖에 나갈 수 있다는 거였어."

그것은 작은 차이가 아니었음을 그 소녀는 알고 있었다.

후에 소녀는 교향곡 "From The Diary of Anne Frank"에서 안네의 일기를 낭독했다.

수익금 전액은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어린이에게 돌아갔다.


    1993년 1월 20일 오늘, 그 시절 전쟁의 치하에서 굶주림에 시달렸던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이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오드리 앳 홈, 루카 도티 저



1월 19일 자식까지 죽여 가며 충성한 자의 최후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관중'은 주군 '제환공'에게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

'이아'를 절대 멀리하라. '이아'는 요리사로 자식을 삶아서 주군의 입맛을 돋워 준 인물이다.

" 이 세상에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큰 사랑은 없다."가 이유였다.

그러나 제환공은 지척에 둔 '이아'에 의해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시신은 방치됐다.


    전국시대, '위문후'는 북쪽의 '중산국'을 정벌코자 대장군으로 '악양'을 삼았다.

그러나 '악양'의 아들이 이미 '중산국'의 높은 관직에 있었다.

모든 신하들이 염려, 반대했지만 '위문후'는 '악양'에게 병권을 주어 내보냈다.

악양은 군대를 이끌고 중산국의 성앞에 당도했다. 그의 아들이 나와 병력을 물릴것을 요구했다.

악양은 한 달의 기한을 줄 테니 중산국 왕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라하고 돌려 보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가고 세 달이 흘렀다.

왕 위문후에게 악양이 아들과 공모하여 역모를 꾸미려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위문후는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중산국은 악양의 아들을 죽여 국을 끓여 그에게 보냈다. 악양은 크게 이미 죽은 아들을 크게 꾸짖은 후 마셔버렸다.

겁을 먹은 중산국의 왕은 자살했고 성문은 열렸다. 성안의 백성은 크게 안도했다.

위문후는 악양 장군에게 크게 상을 내리고 치하했다.

그러나 바로 퇴직시키고 병권을 회수했다.


    1974년 1월 19일 오늘, 중국 허베이성의 한 공사현장에서 위문후의 "죽서기변(竹書紀年)"이 발견됐다.

그 죽간에 그 당시 '위문후'의 심정이 담겨 있었다.

" 자신의 자식까지 죽여가며 공을 세운 사람은 단 한번의 기용만으로 족하다."


출처 : 평설 열국지 유재주

십팔사략 고우영



1월 18일 승리, 복수, 패배, 치욕

 

    프로이센이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를 완파했다.


    1871년 1월 18일 오늘, 패배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Spiegelsaal'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의 황제 빌헬름 1세는 독일 제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수백 년 간 독일이 프랑스에 당해야 했던 치욕의 복수이자, 루이 14세에게 빼앗겼던 스트라스부르크를 탈환한 데 대한 승리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완파했다.


    1919년 1월 18일 오늘, 승리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Spiegwlsaal'에서 승리한 프랑스의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는 독일 제국을 무릎 꿇렸다.

"48년 간 프랑스가 독일에게 당해야 했던 치욕의 복수이자, 빌헬름 1세에게 빼앗겼던 스트라스부르를 탈환한 데 대한 승리의 상징"이었다.(베르사유 조약)

프랑스는 조약 개막일을 일부러 1월 18일, 오늘로 잡았다.


출처 : 새로 쓴 독일 역사 하겐 슐체



1월 17일 민족 영웅의 죽음

 

    그는 알바니아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오스만 제국의 인질로 끌려갔다. 술탄의 궁정에서 최고의 군사 훈련을 받으며 오스만군의 지휘관으로 성장했다.

오스만인들은 그를 고대의 정복자 '알렉산더'에 비유해 '스컨데르베유Skanderbeg'라 이름 지었다.

그러나 그는 탈출했다. 고향 알바니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1~2만 명의 병력으로 오스만군 10만 대군을 막아냈다.

'스컨데르베유Skanderbeg'는 오스만 제국에서 배운 전술, 게릴라전, 기습 그리고 오스만군의 심리를 이용한 작전으로 25년간 알바니아를 지켜냈다. 오스만 제국은 그에게 막혀 이탈리아와 서유럽으로 더 이상 진격하지 못했다.


    1468년 1월 17일 오늘,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 '스컨데르베유Skanderbeg'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오스만군의 침략으로 그가 없는 왕국은 함락됐다. 그의 무덤은 파헤쳐졌다. 그의 뼈조각은 금,은으로 장식되어 적군의 부적으로 착용됐다.

그의 상징인 '염소 머리 투구'와 '검'은 오스트리아 왕가의 수집품이 되었다.

알바니아는 오스트리아 당국에 반환을 요청했지만 오스트리아는 거절했다.

알바니아는 민족 영웅의 그 어떠한 것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1월 16일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시문학』 2호 (1934)


    1903년 1월 16일 오늘, "독(毒)을 차고"의 시인 김영랑이 탄생했다.



1월 15일 8,300만불 = 쌀 1,500만 가마

 

    연면적은 여의도 공원의 2.5배인 18만 평,

건물 내 복도 길이만 28km,

그러나 건물 내 어디에서 어디를 가든 걸어서 7분 내 도착할 수 있도록 설계,

모래와 자갈 68만 톤의 콘크리트, 284개의 화장실, 건축 기간 고작 16개월.


    1943년 1월 15일 오늘, 미국의 심장 펜타곤이 완공됐다.

건축비용만 8,300만 달러로 당시 일제강점기의 조선 민족이 한 해 동안 먹을 식량의 거금이었다.

그러나 오늘 조선 민족은 펜타곤 1.5채를 지을 수 있는 분량의 식량을 공출당했다.



1월 14일 오페라 "토스카"의 평행이동

 

    한 화가는 탈옥한 정치범 친구를 자신의 별장에 숨겨주었다.

로마 경찰청장은 그 화가를 체포했다.

그는 정치범의 소재를 물으며 그 화가를 고문실로 끌고 가 머리에 쇠테를 씌우고 조였다.

그 화가는 끝내 숨졌다.


    1900년 1월 14일 오늘, 로마 코스탄치 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가 초연됐다.


    한 서울대생은 수배 중인 선배를 자신의 하숙집에 숨겨주었다.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그 학생을 체포했다.

그들은 선배의 소재를 물으며 그 학생을 욕조 앞으로 끌고 가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 학생은 끝내 숨졌다.


    1987년 1월 14일 오늘, 박종철은 그곳 남영동에서 사망했다. 곧 화장됐다.


    그후 역사는 7월 28일로 이어진다.



1월 13일 나는 고발한다

 

    "대통령 각하,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축적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것입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빌로 장군이 드레퓌스의 무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쥐고도 이를 은폐했음을 고발합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공니에 장군과 부아데프르 장군이 종교적인 편견과 군부의 배타적인 결속을 위해 불의를 방조했음을 고발합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전쟁부가 여론을 오도하고 대중의 눈을 가리기 위해 신문을 이용해 추악한 캠페인을 벌였음을 고발합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첫 번째 군사법원이 비밀리에 제출된 서류를 근거로 피고인을 유죄 판결함으로써 법을 유린했음을 고발합니다."

"내가 행하는 이 일은 진실과 정의의 분출을 앞당기기 위한 혁명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나에게는 오직 하나의 열망, 즉 빛의 이름으로 고통받아온 인류의 이름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열망밖에 없습니다.

나의 이 불타는 항의는 내 영혼의 외침일 뿐입니다.

나를 법정으로 소환하십시오.

공개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나는 기다리겠습니다."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 Émile Zola, "J'accuse…!"


출처 : 에밀 졸라, 대통령 펠릭스 포르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나는 고발한다! "J'accuse…!"」(1898)



1월 12일 야생의 삶! 글로 태어나다

 

    과거 캘리포니아 남부 사람들은 북부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북부의 차가운 바다에서 나는 신선한 굴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해안의 굴 양식장에서 굴을 훔쳐 파는 한 소년은 재혼한 엄마 부부와 살았다.

부부싸움이 잦은 부모를 피해 간 곳은 도서관이었다.

그 외에 통조림 공장, 아이스크림 가게, 볼링장 등에서도 일했다. 정치집단에서 행패를 부리는 일도 했고 무임승차하는 부랑자로도 생활했다.

수 많은 인간군상을 만났으며 그런 거친 현장에서 삶을 배웠다.

황금이 매장되어 있다는 알래스카까지 갔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뿐이었다.

그러한 그의 거친 여정을 그는 자전적 소설로 남겼다.

그러한 그의 작품은 그를 미국 역사상 최초의 작가로의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었다.


    1876년 1월 12일 오늘, 거친 생의 기록자 '잭 런던Jack London'이 태어났다.

그는 그후 종군 기자로 활약했고 직접 범선을 만들어 태평양을 횡단했다.

그는 그의 인생처럼 살아 온 '야성의 부름'의 고전을 남겼다.

그리곤 4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어쩌면 자살이 맞을 수도 있다.

"책을 읽을 줄 아는 노동자라면 모두 잭 런던의 책을 읽었다." 그에 대한 부고였다.


출처 : 야생의 부름 잭 런던 저



1월 11일 세계 최초의 복권 추첨

     1560년대 영국의 통치자 엘리자베스 1세의 고민은 막대한 국방 자금이었다.

세금을 더 이상 올릴 수도 없었다.

여왕은 꾀를 냈다.

복권의 발행이었다.

1장 10실링, 당청금은 5,000파운드였다.

노동자의 한 달 치 급여로 50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당첨금이었다.


    1569년 1월 11일 오늘, 런던의 세이 폴 대성당 문앞에서 세계최초의 국가 발행 복권 추첨식이 있었다.

당첨자는 나오지 않았다.

발행한 복권은 40만장이었지만 판매된 복권은 3만장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모든 수익금은 여왕이 가져갔다.



1월 10일 나폴레옹의 이혼

 

    "나의 사촌들, 대신들, 그리고 귀족들이여.

지난 15년 동안 나의 삶을 아름답게 해주었던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지기로 한 나의 결정은 오직 프랑스의 안녕을 위한 것이다.

우리 사이에 후계자를 얻을 희망이 사라졌기에, 나는 개인적인 감정을 희생하고 국가의 이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황후의 지위와 명예를 영원히 유지할 것이며, 무엇보다 그녀는 나의 가장 친밀한 친구로 남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나를 위해 치른 이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1810년 1월 10일 나폴레옹 Napoléon.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황제이신 분의 허락을 얻어 선언합니다.

프랑스의 안녕과 정책을 위해, 그리고 제국의 앞날을 위해 후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저는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제 제 생애 가장 커다란 희생을 기꺼이 바치고자 합니다.

저는 이제 황후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하지만 제가 황제의 곁에서 보낸 지난 세월의 명예와 사랑은 영원히 제 가슴속에 남을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분께 저의 모든 충성과 사랑을 남겨둔 채 저는 떠납니다."

1810년 1월 10일 조세핀 드 보아르네(Joséphine de Beauharnais)


    황후의 싸인은 심하게 흔들렸으며 2014년 경매에서 43만 5천유로(6억원 이상)에 낙찰됐다.

나폴레옹의 사인이 든 이혼 서류는 프랑스 당국이 보관중이다.



2월 5일 "썩지 않는 내구성", "치우지 못하는 재앙"

     2015년 8월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수컷 올리브각시바다거북 Olive Ridley Sea Turtle 한 마리가 왼쪽 콧구멍에 이물질이 꽉 박혀 있는 상태로 해양 연구팀에 의해 발견됐다. 고통스러워 쉭쉭거리는 거북이는 숨조차 쉬기 힘들어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