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About)

"안녕하세요" History Diary 365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역사 속 숨겨진 이야기를 매일 기록하는 공간입니다. 🏛️ 매일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여, 그날의 강렬했던 기억과 교과서 밖 생생한 역사적 순간들을 조명합니다. ⏳ 모든 글은 직접 탐구한 문헌과 서적 등 객관적인 사실(Fact)을 바탕으로 작성되며 📜,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는 깊이 있는 시선을 지향합니다. 문의나 제안, 혹은 궁금한 역사가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 Email: historydesign00@gmail.com

2026년 1월 30일 금요일

1월 19일 자식까지 죽여 가며 충성한 자의 최후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관중'은 주군 '제환공'에게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

'이아'를 절대 멀리하라. '이아'는 요리사로 자식을 삶아서 주군의 입맛을 돋워 준 인물이다.

" 이 세상에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큰 사랑은 없다."가 이유였다.

그러나 제환공은 지척에 둔 '이아'에 의해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시신은 방치됐다.


    전국시대, '위문후'는 북쪽의 '중산국'을 정벌코자 대장군으로 '악양'을 삼았다.

그러나 '악양'의 아들이 이미 '중산국'의 높은 관직에 있었다.

모든 신하들이 염려, 반대했지만 '위문후'는 '악양'에게 병권을 주어 내보냈다.

악양은 군대를 이끌고 중산국의 성앞에 당도했다. 그의 아들이 나와 병력을 물릴것을 요구했다.

악양은 한 달의 기한을 줄 테니 중산국 왕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라하고 돌려 보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가고 세 달이 흘렀다.

왕 위문후에게 악양이 아들과 공모하여 역모를 꾸미려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위문후는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중산국은 악양의 아들을 죽여 국을 끓여 그에게 보냈다. 악양은 크게 이미 죽은 아들을 크게 꾸짖은 후 마셔버렸다.

겁을 먹은 중산국의 왕은 자살했고 성문은 열렸다. 성안의 백성은 크게 안도했다.

위문후는 악양 장군에게 크게 상을 내리고 치하했다.

그러나 바로 퇴직시키고 병권을 회수했다.


    1974년 1월 19일 오늘, 중국 허베이성의 한 공사현장에서 위문후의 "죽서기변(竹書紀年)"이 발견됐다.

그 죽간에 그 당시 '위문후'의 심정이 담겨 있었다.

" 자신의 자식까지 죽여가며 공을 세운 사람은 단 한번의 기용만으로 족하다."


출처 : 평설 열국지 유재주

십팔사략 고우영



댓글 없음:

댓글 쓰기

🕊️ 5월 13일: 파티마의 계시와 교황의 용서

  🐑 파티마의 언덕과 세 명의 목동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한적한 마을 파티마의 코바 다 이리아 언덕에서 초자연적 사건이 시작됐다. 루치아(10세), 프란치스코(9세), 히야친타(7세) 등 세 명의 사촌 남매 앞에 빛나는 여인의 형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