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여성 운동가의 죽음과 목사의 저주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멋진 도시 뉴올리언스를 집어삼켰다. 수십만 명의 이재민과 함께 1,400여 명이 희생됐다. 제방 보수 예산 삭감은 허술한 제방을 방치했다. 도시의 80%가 물에 잠기게 했다. 그해 9월 5일자 신문에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 목사의 발언이 기사화됐다.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는 레즈비언 코미디언 때문에 허리케인이 닥친 것이다." 목사는 사망한 한 동성애자의 이름과 함께 그가 지옥에서 며칠째 불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었다. 목사에게 후원금이 몰렸다. 목사는 아프리카 다이아몬드 광산의 소유주다. 목사는 대통령 후보로도 출마했다. ​ 2006년 2월 7일 오늘, 빗발이 날리는 싸늘한 날씨, 엄숙해야 할 어느 미망인의 장례식장에 팻 로버트슨 목사가 나타났다.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미 수차례 법원에 의해 이 미망인 가족에게의 접근 금지 선고를 받았었다. "신은 동성애자와 그 옹호자들을 싫어하신다. 신은 '코레타 스콧 킹'을 싫어하신다. 신은 지금 불과 유황으로 그녀를 고문하고 계시며, 고문의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그녀는 여성 인권 증진, 인종차별 철폐, 동성애자 등의 소수 인권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 온 여성 인권 운동가였다. 그녀는 먼저 간 남편 마틴 루서 킹 2세(Martin Luther King Jr.) 목사 묘소에 합장되었다. ​ 출처 :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2월 5일 플라스틱의 역습

  2015년 8월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수컷 올리브각시바다거북 Olive Ridley Sea Turtle 한 마리가 왼쪽 콧구멍에 이물질이 꽉 박혀 있는 상태로 해양 연구팀에 의해 발견됐다. 고통스러워 쉭쉭거리는 거북이는 숨조차 쉬기 힘들어 했다. 연구팀은 공구를 이용해 코에서 이물질을 제거해 주려 했지만, 단단히 박힌 물체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거북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코에선 연신 피를 뿜어 내고 있었다. 마침내 빼낸 물체의 정체는 찌그러지고 변색된 10cm가 넘는 플라스틱 빨대였다. ​ 1909년 2월 5일 오늘, 벨기에 출신의 '레오 베이클랜드 Leo Baekeland'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결합하여 만든 고체 덩어리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베이클랜드가 만든 돌'이란 뜻으로 '베이클라이트'라 이름 붙였다.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과거 "썩지 않는 내구성"이라고 자랑한 플라스틱은, 현재 "치우지 못하는 재앙"이 됐다. ​ 수컷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은 곧바로 바다로 돌려보내졌다. 연구팀은 "다행히 빨대가 뇌를 찌르지 않아 거북의 생존확률은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고 전했다. ​ 출처 : 내셔널 지오그래픽 "How Did Sea Turtle Get a Straw Up Its Nose?" (2015.08.17)

2월 4일 한반도의 허리

  크림반도 얄타의 흑해가 내려다보이는 '리바디아 궁전 Livadia Palace'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가족의 여름 별장이었다.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우아함을 하얀 석회석으로 마감했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버지니아 뉴포트에서 배편으로 지중해의 몰타까지 7,812km를 항해했고, 다시 2,200km는 비행기로 이동했으며, 남은 130km를 자동차로 6시간 넘게 달려 도착했다. 지병으로 인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던 병약한 루즈벨트에겐 극심한 고통이었다. ​ 1945년 2월 4일 오늘, 그렇게 힘들게 얄타에 도착한 '루스벨트'는 "한국인들은 아직 자치 능력이 없으므로 20~30년간의 신탁통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스탈린은 동의했다. 그렇게 오늘, 한반도의 허리는 끊어졌다. ​ 출처 : 동유럽-CIS 역사기행 유재현 저

2월 3일 42행의 성경 인쇄

  1425년생인 페터 쇠페르 Peter Schoffer는 파리에서 필경사이자 서예가로 활동했다. 인쇄술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아름다운 글씨체를 인정 받아 금속 활자 주조를 발명한 한 발명가의 인쇄 공방에 조수 겸 직원으로 채용됐다. 금속 주조의 정교함과 인쇄 글씨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그들은 성경을 인쇄해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쇄 공방 주인에게 돈을 빌려 준 투자자가 상환을 요구했다. 결국 인쇄 공방 주인은 자신이 찍어 놓은 성경과 그의 발명품인 인쇄기와 인쇄 공방을 투자자에게 넘기고 쫓겨났다. 페터 쇠페르는 주인 대신 투자자 편에 섰다. 투자자의 파트너가 됐고 심지어 그의 딸과 결혼했다. 투자자 장인과 사위 쇠페르는 전 주인의 발명품을 이용해 유럽 최고의 인쇄소로 성장하며 부와 명예를 누렸다. ​ 1468년 2월 3일 오늘, 비운의 인쇄소 주인이었던 금속 활자 발명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Johannes Gutenberg'가 사망했다. 그는 42행으로 이루어진 성경을 최초로 인쇄했으나 한 푼도 벌지 못했다. 그는 교회에 안장되었다. 전쟁 중 교회는 파괴되었고, 그후 철거됐다. 구텐베르크의 유해와 시신은 그렇게 사라졌다. ​ 선광 7년 정사 7월 ㅁ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보다 78년 앞선 1377년에 금속으로 인쇄 된 책이 이미 고려에서 출판됐다.

12월 2일 국제 노예제 철폐의 날

  백인 노예제 폐지론자 존 브라운Jhon Brown은 13명의 백인과 5명의 흑인을 데리고 연방 무기고를 공격 점령했다. 즉시 진압, 체포된 뒤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대단히 평화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개 '살인'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인류의 대의를 진척시키는 데 이렇게 말고는 달리 쓰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 1859년 12월 2일 오늘, 선거운동을 하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브라운은 엄청난 용기와 이타정신을 보여주었으며, 우리처럼 노예제를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며 그의 사형집행으로 인한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1985년 12월 2일 오늘, 유엔 국제 노예제 철폐의 날로 제정했다. 공식적인 배경은 설명하지 않았다. ​ 출처 : 권력의 조건 도리스 컨스 굿윈

11월 9일 냉전의 장벽 붕괴

  1961년 8월, 베를린을 가르는 장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4층 아파트 창문조차 봉쇄당한 간호사 '이다 지크만(Ida Siekmann)'은 서베를린 쪽 창밖으로 이불을 던진 뒤 몸을 날렸다. 소방관들이 미처 안전 매트를 펴기도 전이었다. 이송 도중 그녀는 사망했다. 생일 하루전이었다. 그녀는 장벽이 낳은 첫 번째 희생자다. 이후 그녀의 집은 헐렸고, 그 자리에는 182km에 달하는 견고한 콘크리트 벽이 들어섰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장벽은 여전히 누군가의 꿈을 가로막고 있었다. 조종사와 배우를 꿈꾸던 청년 '크리스 귀프로이(Chris Gueffroy)'는 군 장교가 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이 좌절되자 탈출을 결심했다. 1989년 2월, 그는 친구와 함께 운하를 건너 마지막 울타리에 도달했다. 스웨덴 총리의 방문으로 발포 명령이 중지되었다는 소문을 믿었으나, 그것은 비극적인 오보였다. 경비병들의 총성이 울려 퍼졌고, 귀프로이는 가슴에 두 발의 총탄을 맞고 친구 옆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그가 장벽에서 총탄에 쓰러진 마지막 희생자가 되었다. 함께했던 친구는 체포 직전 자신의 신분증을 장벽 너머로 던졌다. 이름만이라도 먼저 자유를 찾길 바랐던 그는 훗날 서독 정부의 '정치범 석방 거래(Freikauf)'를 통해 진짜 자유를 얻게 된다. 4명의 국경수비대는 국경수비대장 상을 수상했고 150 동독 마르크의 상금까지 받았다. ​ 1989년 11월 9일 오늘, 그 장벽이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