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 금요일

1월 4일 점자의 탄생



    프랑스, 한 소년이 아버지의 공방에서 송곳에 눈이 찔렸다. 감염은 양쪽 눈의 시력을 모두 앗아갔다.

세 살 때였다.

소년은 지적능력이 뛰어났다. 교과서를 볼 수 없어 완전히 외워 버렸다.

소년은 군대의 야간 문자에서 힌트를 얻어 바늘로 종이를 찍어 자신만의 암호를 만들었다.

식재료통과 양념통에 새긴 표시를 손가락으로 읽어 설탕과 소금통을 정확히 구별했다.

1809년 1월 4일 오늘, 이렇게 점자를 창시한 '루이 브라이유 Louis Braille'가 태어났다.


    '브라이유 Braille'는 '점자'를 뜻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1월 3일 파문과 혼인



    중세, 가톨릭교회법은 사순절(Lent)기간에 육식은 물론 우유, 버터, 치즈등의 유제품 섭취도 금지했다.

올리브 오일이 풍부한 남유럽과 달리, 올리브가 자라지 않는 독일에선 버터가 필수적인 지방 섭취원이었다.

독일 사람들이 버터를 먹기 위해선 로마 교황청에 돈을 지불하고 '버터 섭취 허가증 Butterbrief'를 사야 했다.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는 이 시스템을 강력히 비난했다.

"우리 땅에서 나는 좋은 버터를 먹기 위해 왜 로마에 돈을 내야 하는가?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마라."

그의 논리는 독일 민중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1521년 1월 3일 오늘,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이자, 교수, 수도원 지구장인 마르틴 루터가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최종 파문 당했다.

그로부터 4년 후, 그는 그가 수녀원에서 탈출시킨 수녀와 결혼했다.



1월 2일 알함브라 Alhambra' 궁전의 추억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의 사비카 언덕의 흙은 붉은 빛을 띤다.

그 위에 '알 함라 Al-Hamra (붉은 것)'란 뜻의 궁전이 지어졌다.

'알함브라 Alhambra' 궁전이다. 이슬람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궁전의 주인이 되기 위한 이슬람 왕조의 내전으로 국력은 분산, 약화됐다.

기독교 세력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고사작전으로 도시와 궁전 주변의 농경지를 파괴하고 보급로를 차단했다.

시민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궁전의 마지막 왕인 '보압딜'은 시민들의 안전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항복협약을 체결했다.


    1492년 1월 2일 오늘, 보압딜은 알함브라 궁전의 열쇠를 기독교 왕에게 넘겨주며 항복했다.

그는 700년간 이어왔던 왕국과 아름다운 궁전을 뒤돌아보며 '한탄의 언덕'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쏘아 붙였다.

"사내답게 지키지 못한 궁전을 위해 여자처럼 울지마라."

물론 항복의 조건인 시민의 안전은 지켜지지 않았다.



1월 1일의 의지

 

매년 1월 1일은 자신과의 약속의 날이였다. 의지의 날이였다.

누군가는 금연을,

누군가는 금주를,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누군가는 근육 만들기를,

누군가는 재테크를,

누군가는 책읽기를, ....

누군가는 또 다른 의지를 스스로 다짐했다.

비록 끝까지는 가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자신의 의지를 지키려 노력했다.

오늘이 그 날이다.

그리고 그 작은 의지는 스스로에겐 역사이기도 하다.

모두의 1월 1일 오늘, 그날 그날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기억하며 알아가는 하루가 되고, 또 자신의 역사를 엮어 갈 수 있는 역사의 다이어리를 편찬한다.

자신만의 역사는 또 다른 거대한 역사가 된다.

- 서문을 대신하여 1월 1일의 의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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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January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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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첫번째 맥주

  '캐리 네이션 Carry Nation'은 남편의 알코올 중독으로 결혼 내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어느 날, "술집을 부수어 나라(Nation)를 이끄라(Carry)"는 운명적인 신의 계시를 듣고, 서슬 퍼런 도끼를 든 채 전국의 술집을 습격했다. 분노한 술집 주인들이 입구마다 "모든 나라(Nations) 사람은 환영하지만, 캐리(Carrie)만은 절대 사절한다"는 문구를 써 붙일 정도로 그녀의 투쟁은 강렬하고도 집요했다.

이러한 개인의 분노가 국가적 법령으로 이어진 데에는 시대적 비극도 한몫을 했다. 1914년 발발한 세계대전은 미국의 금주 여론에 불을 지피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국의 맥주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이들은 대부분 독일 출신이었고, 이들이 조국 독일과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다는 의구심은 곧 독일 맥주에 대한 국민적 반감으로 이어졌다. 정치권은 이러한 반독 정서를 기회 삼아 금주법을 준비했고, 마침내 1920년 1월, 알코올 함량 0.5% 이상의 술에 대해 생산과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금주법이 미국 전역에 선포됐다.

그러나 오히려 금주법은 갱단에겐 호재였다. 시카고의 냉혹한 마피아 보스 '딘 오배니언'은 평소 정갈하게 꽃을 다듬는 꽃집 주인으로 위장하며 이중생활을 즐겼다. 그는 상대 마피아 조직에게 불법 양조장을 팔아 넘겼다. 그러나 그는 연방 수사국이 곧 그 양조장을 급습할거라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살해됐다. 그후 갱단들의 피의 복수가 이어졌다.

길었던 어둠의 시대를 끝낸 것은 역설적이게도 경제적 절망이었다. 대공황의 늪에 빠진 미국은 새로운 일자리가 절실했고, 정치인들은 양조장의 합법화가 수많은 고용을 창출할 돌파구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새로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술의 합법적 재생산과 판매를 전격 제안했다.

1933년 4월 7일 오늘 자정이 지나자마자, 합법적으로 생산된 첫 번째 맥주를 가득 실은 버드와이저사의 마차가 백악관으로 달려갔다. 이로서 금주법은 완전히 그 효력을 상실했다.

출처 ; 맥주의 역사 조너던 헤네시, 마이클 스미스

4월 7일 한 조선인의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 미군 포로의 삶

  조선인으로 태어나 18세의 나이에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됐다. 일본 관동군으로 소련군과의 전투에 투입됐다.

일본은 참패했다.

소련군의 포로가 됐다.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소련과 독일군의 전투에 소련 군복을 입고 투입됐다.

소련군이 패했다.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독일은 '동방군단'을 만들었고 독일 군복을 입혀 프랑스 노르망디의 해변을 지키게 했다.

독일은 패망했다.

미군의 포로가 됐다.

영어는 못했고 독일어도 못했다. 러시아어도 못했고 일본어 조금과 한국어로 대답했다.

미군은 알아듣지 못했다. 영국의 수용소로 보내졌다.

1992년 4월 7일 오늘, 이 무명에 가까운 한국인이 미국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족들은 그가 그저 평범한 아버지인 줄로만 알았다.

미군이 알아듣지 못한 그 말은,

"이제 제발, 전쟁이 끝난 건가요?"였다.

출처 : 제2차 세계대전 앤터니 비버 저

2월 5일 "썩지 않는 내구성", "치우지 못하는 재앙"

     2015년 8월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수컷 올리브각시바다거북 Olive Ridley Sea Turtle 한 마리가 왼쪽 콧구멍에 이물질이 꽉 박혀 있는 상태로 해양 연구팀에 의해 발견됐다. 고통스러워 쉭쉭거리는 거북이는 숨조차 쉬기 힘들어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