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 금요일

2월 1일 우린 성공할 때마다 조금씩 더 위험해지고 있었다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가 7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발사 촬영분의 영상을 분석하던 하위 엔지니어들은 기체 외부의 단열재가 떨어지면서 왼쪽 날개 부분을 강타하고 부서지는 장면을 발견했다.

즉시 임무 관리팀 MMT 의 린다 햄 의장에게 보고됐다. 그리고 국방부에 요청해 고해상도 위성 사진을 찍어 확인해 봐야 한다고 건의했다. 의장 린다 햄은 일정 차질과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는 논리로 묵살했다. 그런 작은 문제에도 우린 늘 성공했다는 논리였다.

엔지니어들은 별도로 국방부에 위성 촬영을 요구했으나 이를 안 린다 햄은 즉시 중지시켰다.

매뉴얼대로의 일정 진행이 우선이었다.


    2003년 2월 1일 오늘, 임무를 마친 컬럼비아호가 지구 귀환을 시도했다.

그녀가 무시했던 왼쪽 날개 부위의 작은 손상이 대기권의 1,600도의 열기를 견디지 못했다.

우주 왕복선 전체가 상공에서 공중 분해해됐다. 승무원 7명 전원은 사망했다.

25,000명의 인원이 3개월의 수색끝에 심하게 훼손된 7명 전원의 유해를 수습하여 가족 품에 돌려줬다.

사고 조사 후 MMT의장 린다 햄은 우주센터의 다른 부서로 보직 변경됐다.

이후 민간 우주 기업과 대학에서 활동했다.

그저 매뉴얼대로의 대처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그 어떠한 처벌이나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성공할 때마다 조금씩 더 위험해 지고 있었다.


출처 : 컬럼비아의 사고 조사 보고서 중



1월 31일 사회주의 국가의 첫 자본주의 햄버거

     맥도날드 빅맥의 가격 3.75루블.

소련 노동자의 한 달 급여 약 150루블의 2.5%나 됐다.

한 달 버스 이용권이 3루블이었다.


    1990년 1월 31일 오늘, 소련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소련 맥도날드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맥도날드 매장이었다.

30,000여명의 모스크바 시민이 첫 빅맥을 먹기 위해 수 킬로미터의 줄을 섰다.

첫번째 손님은 고아원의 아이들로 무료 햄버거를 제공 받았다.

소련은 오늘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약 2년 후 해체됐다.

그리고 32년 후...


    2022년 3월 14일, 맥도날드의 상징인 노란색 M자 골든 아치가 철거됐다.

30,000여명의 모스크바 시민이 마지막 빅맥을 먹기 위해 수 킬로미터의 줄을 섰다.



1월 30일 국왕의 처형과 복수

     163cm의 단신에 심한 말더듬이 였던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과 교회의 예배의식을 의회에 강요했다.

그는 의회의 통제없이 세금을 걷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기사 서임에 수수료를 징수하고, 국왕이 헐값에 물건을 사들일 수 있는 강제매입권을 사용했으며, 작위를 마구 수여했다. 특히 이 시기에 관직 매매가 국왕의 주된 수입원이기도 했다.

이러한 수단들의 남용은 모든 계급의 반발만 불러 일으켰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의 귀족계급에 까지 영국국교회를 강요함으로써 종교적인 대반란의 불을 지폈다.

스코틀랜드 대귀족과 지주들은 소작인들의 무장과 도시민들의 자금 덕분에 강력한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정의 군사력은 그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의회와 동맹을 체결했고 그 중심엔 혜성처럼 나타난 '올리버 크롬웰'이 있었다.

이 잉글랜드 내전에서 참패한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로 도망쳐 투항했으나 스코틀랜드의 반군 세력은 돈을 받고 그를 크롬웰에게 인계한 후 잉글랜드에서 철수했다.


    1649년 1월 30일 오늘, 찰스 1세가 반란죄로 사형선고 후 처형됐다.

영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처형된 국왕이 됐다.

올리버 크롬웰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연방의 호국경이 되어 연방 최고 통치자가 됐다.

9년 후인 1658년 호국경 크롬웰이 사망하고 얼마 뒤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옹립되면서 왕정이 복고됐다.


    1661년 1월 30일 오늘, 찰스 2세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형시킨 크롬웰의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어 목을 잘랐다.

찰스 2세는 일부러 오늘을 택했다.

크롬웰의 목은 웨스트민스터 홀 지붕위에 매달렸다. 20년 넘게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299년후에 땅에 묻혔다.


출처 :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페리 앤더슨저



1월 29일 최초의 자동차, 최초의 운전자

     벤츠 파텐트-모터바겐 Benz Patent-Motorwagen

외관 : 불안정한 4륜 대신 조향이 쉬운 3륜 자전거 형태

운전대 : 둥근 형태가 아닌 단순화 된 막대기 모양(Tillr)

엔진 : 0.75마력(hp)의 954cc의 단기통 4행정 엔진 장착

속도 : 400rpm의 최고 속도 16km/h (10mph)

변속 : 전진 1단 기어 채택 (후진 불가)

연료 : 약국에서 판매하는 '리그로인 Ligroin' 주입

연비 : 리터(L)당 10km 주행, 4.5L 연료탱크 장착

가격 : 600 골드 마르크

제조 판매 : Benz & Company (Benz & Cie. Rheinische Gasmotoren-Fabrik)


    1886년 1월 29일 오늘, 카를 벤츠 Karl Benz가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삼륜차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특허번호는 No. 37435였고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이 최초 자동차의 최초 운전자는 그의 아내이며 그녀는 두 아들을 태우고 106km 떨어진 친정으로 장거리 주행을 떠났다. 남편은 몰랐다.

도중에 그녀가 연료를 샀던 약국은 '세계 최초의 주유소'라는 간판을 달고 지금도 영업중이다.



1월 28일 이루지 못한 우주에서의 평범한 수업

     1948년생인 '샤론 크리스타 맥올리프 Sharon Christa McAuliffe'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환하게 웃는 얼굴, 두 아이를 가진 워킹 맘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교실을 단지 우주로 옮겨 놓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우주에서 느낀 감동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하는 후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11,41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NASA의 '우주 교사 프로트 Teacher in Space Project'에 선발됐다.

그러나...


    1986년 1월 28일 오늘, 그녀를 포함하여 승무원 7명을 태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여 전원 사망했다.

발사 73초만이었고 폭발 원인은 작은 오링의 결함 때문이었다.

21년 후 다른 선생님이 우주에서 그녀의 수업을 대신 진행하며 그 꿈을 이어갔다.

당시 발사 현장을 지켜봤던 6살의 딸은 어머니의 뜻을 이어 선생님이 됐다.



1월 27일 "174517"

     1943년 12월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청년이었던 '프리모 레비 Primo Levi'가 파시스트에 저항하는 파르티잔 활동 중 체포됐다.

유대인임이 밝혀지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열차에 태워졌다.

팔뚝에 '174517' 라는 번호가 새겨졌고 그의 이름은 없어졌다.

그는 이제 인간이 아닌 독일 제국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부속품일 뿐이었다.

레비는 수용소 내부를 화학 실험실을 관찰하듯 묘사했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 현실의 고통 속에 눈빛은 꺼지고,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남의 빵을 훔치고, 수용소장에게 아부하거나 특별한 기술로 남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바닥이 어디인지를 묻고 있었다.

소련군이 다가오자 독일군은 수감자를 이끌고 서쪽으로 퇴각했다.

레비는 성홍열에 걸려 병동에 버려졌다. 레비는 동료와 함께 난로를 설치하고 버려진 감자를 나눠 먹으며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았다.

서로가 빵을 뺏는 대신 서로를 돕기 시작했다.


    1945년 1월 27일 오늘, 레비를 포함한 죽지 못한 7,000여명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데는 10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67세때 자살했다.

숫자 '174517' 이 그의 묘비에 새겨졌다. 그의 수감번호였다.


출처 :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1월 26일 인조의 새해 아침

     대청(大淸) 황제가 조선 국왕에게 고하노라

짐(朕)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너의 강토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금 네가 외로운 성(孤城)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오랫동안 형세를 버티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믿기 때문인가?

너는 죽어가는 명(明)나라가 구원병을 보내줄 것이라 믿는가?

그들은 이미 쇠락하여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처지다.

너를 도우러 올 군대는 없다.

아니면 네가 험준한 산성을 믿고, 추위가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보라, 하늘이 내리는 이 혹독한 추위는 너희 군사들을 얼어 죽게 만들지만, 북방에서 자란 우리 군사들에게는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늘조차 너를 버리고 짐을 돕고 있지 않은가.

짐은 너를 죽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네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네 곁에서 화친을 배척하고 싸움을 부추긴 어리석은 신하(척화신)들 때문이다.

살 길이 딱 하나 있다.

너를 그르친 저 간신들을 묶어 성 밖으로 보내라.

그리고 성문을 열고 나와 짐의 앞에 무릎을 꿇어라.

네가 만약 고집을 피우며 끝까지 성 안에서 쥐새끼처럼 버틴다면, 짐은 단칼에 성을 무너뜨리고,

너의 종묘사직을 짓밟고 씨를 말려버릴 것이다.

성문을 열고 나와 목숨을 보전할 것인가,

아니면 앉아서 참혹한 죽음을 맞을 것인가.

살고 죽는 것, 보전하고 멸망하는 것은 오직 너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

    숭덕(崇德) 2년 정월 초하루 대청 황제 홍타이지


    1637년 인조 15년 1월 26일 오늘, 음력 새해 첫날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오늘 이 편지를 받고 대성통곡했다.

오늘로부터 29일 후 곤룡포를 벗고 남색 융복인 신하의 옷으로 갈아입고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었다.' 정축하성(丁丑下城)

편지의 원본은 남아 있지 않으며 번역되어 기록해 놓은 한문본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원본내용이 기록 된 만주어 원본 '만문노당 (滿文老檔)'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보관되어 있다.


출처 : 승정원 일기 인조 15년 1월 1일



2월 7일 혐오가 사랑을 저주하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멋진 도시 뉴올리언스를 집어삼켰다. 수십만 명의 이재민과 함께 1,400여 명이 희생됐다. 제방 보수 예산 삭감은 허술한 제방을 방치했다. 도시의 80%가 물에 잠기게 했다. 그해 9월 5일자 신문에 목사 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