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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5일 금요일

7월 6일, 저항의 시인 신석정

'이 밤이 너무 길지 않습니까.'

중략

어머니...

밤이 왔습니다.

그 검고 무서운 밤이 또 왔습니다.

...

태양이 가고

...

어둠은 아름다운 전설과 신화까지도 먹칠하였습니다.

어머니

...

옛이야기나 하나 들려 주세요.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1907년 여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시절, 일본인 교사가 수업료를 내지 못한 여학생을 학대하자, 아이는 전교생 동맹휴학을 주동했다. 무기정학을 당했다.

일제에 맞선 첫 지조였다.

1931년 《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의 일제에 대한 저항의 지조는 시로도 굽히지 않았다.


'방(房)'

세상이 뒤집어졌었다는 그리고 뒤집어지리라는 이야기는 모두 좁은 방에서 비롯했단다.

...

그 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

새로운 세대가 오리라는

새로운 세대가 오리라는

그 막막한 이야기는 바다 같이 터져나올 듯한 울분을 짓씹는 젊은 '인사로푸'들이 껴안은 질화로 갓에서 동백꽃보다 붉게 피었다.

천년이 지나갔다.

좁은 방에서.

만년이 지나갔다.

좁은 방에서.


탄압은 거세졌다. 1939년 이 시 '방(房)'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

난아,

푸른 대가 무성한 이 언덕에 앉아서

너는 노래를 불러도 좋고 새 같이 지줄대도 좋다.

지치도록 말이 없는 이 오랜 날을 지니고

벙어리처럼 목놓아 울 수도 없는 너의 아버지 나는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내 심장을 삼으리라.


1940년 '문장'에 투고한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는 아예 검열로 삭제됐다. '문장'은 곧 폐간됐다.

일본어 원고 청탁에 단호히 거절하며 절필을 선언했다.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경찰서의 출두명령엔 피신했다.

그렇게 광복을 맞았다.

발표 없이 쓰기만 했던 시들이 해방을 맞았다.


'슬픈구조'

...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더뇨.


광복 직후, 새나라 문학 건설을 도모했다. 교직 생활과 함께 해방 직후의 불안한 상황을 '서른 여섯 해'의 어둠으로 노래했다.


'꽃덤불'

...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

겨울의 달이 아직도 차거니

...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광복 이후, 그는 독재 앞에서도 저항했다.

교사들이 '교원노조' 설립을 요구하며 국회 의사당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는 시로써 응원했다.


'단식의 노래'

-싸우는 교육동지들에게-

배고픈 사람들끼리
주저앉고 쓰러진 채
서로서로 얼굴을 본다
눈이 눈을 본다
마음이 마음을 본다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진다

...

우리들의 것을 찾기 위하여
이웃들의 것을 찾기 위하여
다시는 不義와 不正에 지지 않기 위하여

...

同志여! 그 거룩한 손을 잡고
울어도 좋다!
...
우리의 民主學園을 위해서…


그는 이 시를 썼다는 이유로 끌려갔다.

며칠의 취조 끝에 풀려났다.

그러나 그의 독재에 대한 저항은 굽히지 않았다.


'영구차의 역사'


강물 같은 밤을

잉태한 촛불 아래

분향焚香이 끝난

다음,

영구차靈柩車는 다락 같은 말에 이끌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

목메어 우는 소녀를 보았다.

...

그것은 아버지의 영구차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영구차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웃들의 영구차도 아니었다

...

그 어느 별을 지나갔을 나의 외로운 영구차였는지도 모른다.

촛불이 흔들리는 강물 같은 밤에……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혹독한 취조를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뒤 문학상 심사를 하던 도중에 쓰러졌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1974년 7월 6일 오늘,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


시인 신석정. 그의 이름은 잊히지 않았다. 

오랫동안 목가 시인으로만 읽히던 그를, 뒷사람들은 저항 시인으로 다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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