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국, 그러나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선언하며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노예제는 남부와 북부 모두에서 이어졌다.
뉴욕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노예제는 약 200년간 존속했다. 1626년 네덜란드인이 처음 노예를 들여왔고, 영국 지배 아래 규모가 커졌다. 1790년 뉴욕의 노예는 2만 1천 명이 넘어, 북부에서 가장 많았다.
폐지는 단번에 이뤄지지 않았다. 1799년 법은 그 뒤에 태어난 아이들만, 그것도 오랜 의무 노동을 마친 뒤에야 풀어주었다. 1817년 법이 마지막 해방일을 1827년 7월 4일로 정했다.
⛓️ 1827년 7월 4일
그렇게 이날, 뉴욕주에서 노예제가 법으로 완전히 끝났다. 약 4,600명이 자유인이 되었다. 뉴욕은 노예제 전면 폐지법을 통과시킨 첫 주였고, 남북전쟁 이전 북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방이었다.
해방일이 7월 4일이 된 것은 10년 전 법이 그렇게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하필 나라의 독립기념일과 같은 날이었다.
📅 하루 뒤에
정작 자유를 얻은 사람들은 그날을 축하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술 취한 백인들이 독립기념일을 즐기다 벌이는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시끄러운 그날 대신 자신들만의 날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튿날인 7월 5일, 약 4,000명이 브로드웨이를 행진해 아프리칸 시온 교회에 모였다. 그곳에서 흑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 윌리엄 해밀턴이 말했다. "오늘 우리는 쓰라린 속박에서 벗어나 구원받았다."
이 '7월 5일' 기념은 그 뒤로도 수십 년간 이어졌다. 25년 뒤, 탈주 노예 출신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유명한 연설 "노예에게 7월 4일은 무엇인가"도 7월 5일에 나왔다. 미국이 자유를 기념하는 그날을 노예의 눈으로 되물으며, 나라의 이상과 노예제라는 현실의 모순을 정면으로 고발한 연설이었다.
🎙️ 오늘날
'7월 5일'을 기념하는 전통은 남북전쟁 이후 대체로 사그라들었고, 노예해방을 기리는 날의 자리는 오늘날 6월 19일 준틴스로 옮겨갔다. 다만 더글러스의 그 연설은 지금도 해마다 7월 5일에 낭독된다. 워싱턴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는 국립공원관리청이 매년 참석자들과 함께 연설 전문을 소리 내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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