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황제
네로는 서기 54년 열여섯 살에 황제가 되었다. 클라우디우스가 죽은 뒤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정치적 수완에 힘입어 권좌에 올랐다. 통치 초기에는 스승 세네카와 근위대장 부루스의 보좌를 받아 비교적 안정된 정치를 폈다.
권력이 공고해지자 견제 세력을 차례로 제거했다. 59년에 친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죽였고, 아내 옥타비아를 내쫓은 뒤 처형했다. 64년 로마 대화재 이후에는 그리스도교도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박해했다.
🔥 무너지는 통치
대화재로 도시 상당 부분이 불탔다. 네로는 폐허 위에 황금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를 지었고, 재건 비용과 사치로 재정이 빠르게 악화됐다. 65년 피소의 음모가 발각되자 세네카를 비롯한 다수의 원로원 의원과 측근이 죽음을 강요받았다.
68년 봄 갈리아 총독 빈덱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의 군대는 진압됐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히스파니아 총독 갈바가 곧 가담했고, 마지막까지 네로를 지키던 근위대마저 등을 돌렸다.
⚖️ 공공의 적
원로원은 네로를 국가의 적, 호스티스로 선포했다. 옛 처벌 방식대로 공개 태형으로 처형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지지 기반을 모두 잃은 네로는 로마를 빠져나왔다.
🗡️ 도주와 죽음
네로는 해방노예 파온의 교외 별장에 숨었다. 추격자들이 다가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으나 칼을 들지 못하고 망설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무슨 예술가가 스러지는가(Qualis artifex pereo)"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비서 에파프로디투스의 도움을 받아 목을 찔러 숨졌다. 68년 6월 9일오늘이었다.
🏺 네 황제의 해
네로의 죽음으로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끝났다.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첫 황실 혈통이 한 세기 만에 단절됐다. 뒤이어 69년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가 차례로 제위를 다투는 네 황제의 해가 펼쳐졌다. 혼란은 베스파시아누스가 플라비우스 왕조를 세우면서 비로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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