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아의 탄생
무함마드는 570년경 아라비아반도 메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그가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고아로 자란 그는 상인으로 일하다 40세 되던 610년, 메카 외곽 히라 동굴에서 첫 번째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낭송하라(이크라)"고 명했고, 그것이 쿠란의 시작이었다.
🏜️ 분열과 착취의 세계
7세기 초 아라비아반도는 부족 단위로 쪼개진 세계였다. 혈연과 씨족이 모든 것을 결정했고, 부족 밖의 인간은 보호받지 못했다. 메카는 상업 도시였지만 그 번영은 소수 쿠라이시 귀족 가문에 집중되었고, 카바 신전을 둘러싼 다신교 순례 경제가 그들의 부를 유지시켰다. 여성은 재산으로 취급되었고, 갓 태어난 딸을 산 채로 묻는 관습이 존재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었으며, 가난한 자는 채무 노예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부족 간 피의 복수는 수세대에 걸쳐 이어졌고, 이를 중재할 어떤 초부족적 권위도 없었다. 무함마드가 태어난 세계는 연대가 아닌 분열을, 자비가 아닌 힘을 원리로 삼은 세계였다.
⚡ 혁명적 메시지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혁명적이었다. 우상 숭배를 규탄하고, 부유한 상인들의 가난한 자 착취를 비판하며, 정의와 유일신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를 촉구했다. 인종이나 민족,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당시 메카 지배 계층인 쿠라이시 부족의 기득권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박해가 뒤따랐다. 622년 그는 추종자들과 함께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주했다. 이 사건을 히즈라(헤지라)라 하며, 이슬람력의 원년이 이 해에서 시작된다. 메디나에서 무함마드는 신정 국가의 토대를 세웠고, 629년 메카를 무혈로 정복했다. 그의 생전에, 그는 아라비아 남부 전역의 사실상 통치자였다.
📜 고별 설교: 그의 유언
사망 직전인 632년 3월, 그는 약 12만 명의 신자들과 함께 마지막 순례(하즈)를 마쳤다. 메카에서 남동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아라파트 산은 이슬람 전통에서 아담과 이브가 지상에 내려온 후 재회한 장소로 여겨지며, "자비의 산(자발 라흐마)"이라 불린다. 무함마드는 "하즈는 곧 아라파트"라고 말했을 만큼, 이 장소에서의 '서 있음(우쿠프)' 의식은 순례의 핵심 기둥으로 여겨진다. 그곳에서 행한 고별 설교는 그의 사상적 유언이었다. "아랍인이 비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백인이 흑인보다, 흑인이 백인보다 우월하지 않다. 오직 경건함과 선한 행동으로만 구별된다"고 그는 선언했다. 노예 처우에 대해서도, 자신이 먹는 것을 먹이고 자신이 입는 것을 입히라고 명했다.
632년 6월 8일 오, 그는 아내 아이샤의 거처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63세였다. 사인은 열병으로 추정된다.
⚔️ 죽음이 남긴 균열
그러나 그의 죽음은 해방이 아닌 혼란의 시작이었다. 후계자 문제는 초기 무슬림 공동체를 이슬람 역사 첫 세기 동안 수많은 분파로 분열시킨 핵심 쟁점이 되었다. 수니파는 공동체 협의를 통해 아부 바크르가 적법하게 후계자가 되었다고 믿었고, 시아파는 무함마드가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주장했다. 이 분열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 창시자와 제도 사이의 간극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오늘날의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와 얼마나 같은가.
무함마드가 설교한 평등의 언어는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이슬람은 제국과 결합했고, 법학파가 형성되었으며,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의 해석을 둘러싼 정치적 다툼이 신학을 뒤덮었다. 와하비즘과 살라피즘 같은 근대 운동들은 초기 이슬람 모델의 진정성과 적용 가능성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어떤 이들은 무함마드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외쳤고, 어떤 이들은 그 복귀 자체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용되었다.
이는 이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창시자의 말과 제도화된 종교 사이의 간극은 기독교와 불교에도 존재한다. 예수는 가난한 자의 편을 들었지만 교황청은 황제와 손잡았고, 붓다는 무소유를 설했지만 사원은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무함마드 역시 평등을 선언했지만, 그의 이름으로 세워진 제국은 정복과 노예제를 수반했다.
무함마드의 고별 설교는 1400년이 지난 지금도 포용과 평등의 메시지로 인용된다. 그것이 그가 의도한 바였는지, 그리고 현재 이슬람의 다양한 모습들이 그 의도를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지는, 역사가가 아닌 18억 무슬림들이 저마다 안고 살아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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