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터 허가증
중세 가톨릭교회법은 사순절 동안 육식과 함께 우유, 버터, 치즈 같은 유제품도 금했다. 올리브유가 풍부한 남유럽과 달리, 올리브가 자라지 않는 독일에선 버터가 중요한 지방 섭취원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버터를 먹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 돈을 내고 '버터 허가증(Butterbrief)'을 사야 했다.
마르틴 루터는 이 제도를 비난했다.
"우리 땅에서 나는 좋은 버터를 먹기 위해 왜 로마에 돈을 내야 하는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마라."
그의 논리는 독일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1520년 6월 15일, 칙서
루터의 비판은 면벌부와 교황의 권위로 향했다. 1517년 그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내건 95개조는 인쇄기를 타고 유럽 전역에 퍼졌다.
1520년 6월 15일, 교황 레오 10세가 칙서 '엑수르게 도미네(Exsurge Domine, 일어나소서 주여)'를 반포했다. 칙서는 루터의 글에서 추린 41개 주장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60일 안에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하겠다고 통보했다. 루터의 책은 불태워졌고, 그 책을 지닌 자도 파문 대상이었다.
✊ 1520년 12월 10일, 칙서를 불태우다
루터는 철회하지 않았다. 60일째 되던 1520년 12월 10일, 그는 비텐베르크 엘스터 문 앞에서 교회법 책들과 함께 그 칙서를 불태웠다. 이로써 루터와 로마의 결별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 1521년 1월 3일, 파문
1521년 1월 3일,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이자 교수, 수도원 지구장이던 마르틴 루터가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최종 파문당했다.
넉 달 뒤 보름스 제국의회에서도 그는 철회를 거부했다.
💍 결혼
그로부터 4년 뒤인 1525년, 루터는 자신이 수녀원에서 탈출시킨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 성직자의 독신을 명한 교회법을 거스른 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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