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 금요일

1월 25일 12살 지능의 알 카포네 사망

     소니 Sonny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매독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일한 유산이었다.

면역 체계가 약해져 귀를 앓았고 결국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뇌수술까지 받았다.

마트에서 3.5달러짜리 물품을 훔치다 적발됐다. 진통제였다.

어렵게 대학 졸업 후 외판원, 식당등의 일로 가난한 삶 속에서도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했다.

그의 아버지는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많은 돈을 자랑했다.

그러나 아들 소니는 그런 아버지의 삶을 철저히 외면했고, 후에 이름까지 개명했다.


    1947년 1월 25일 오늘, '소니'의 아버지이자 마피아의 두목인 '알 카포네 "Al" Capone'가 사망했다.

아들에게 물려 준 매독에 의한 뇌출혈과 폐렴이 사망 원인이었다.

그는 매독균으로 인해 죽기 전 12살의 지능만을 가지고 있었다.



1월 24일 윈스턴 처칠경 사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즉위 후 첫번째 가터 훈장의 주인공으로 Mr.처칠을 지목했다.

Mr.처칠은 공식적으로 윈스턴 처칠 경 Sir Winston Churchill이 됐다.

훈장의 수여 명분은 그의 '국가에 대한 위대한 헌신'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1937년 '팔레스타인 왕립위원회'에서 유대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를 따로 만드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강력히 반대했고, 영국의 위임통치를 주장했다.

훈장은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위대한 헌신'의 결과였다.


    1965년 1월 24일 오늘, 윈스턴 처칠이 사망했다.

평소 '아버지와 같은 날 죽고 싶다'고 말했는데 정확히 같은 날 사망했다.

그는 아버지보다 정확히 2배 더 살았다. 향년 90세였다.

팔레스타인은 정확히 그의 논리 속에 아직도 신음하고 있다.



1월 23일 최초의 여성의사 탄생

     1821년생인 엘리자베스 블랙웰 Elizabeth Blackwell은 의대를 지원했으나, 모든 의과대학은 여자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뉴욕의 제네바 의대 학장은 남학생들의 의견을 묻기로 하고 학생들에게 투표를 맡겼다.

남학생들은 하나의 장난이나 이벤트로 여기고 '찬성'에 표를 던졌다.

그녀는 입학했지만, 주위의 조롱과 따돌림은 물론이고 해부학등 일부 수업에서는 참관조차 거부 당했다.


    1849년 1월 23일 오늘, 그녀는 세계 여성 최초의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수석이었다.

학장은 그녀에게 학위기를 건네면서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최초의 여성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으나, 편견은 여전했다.

외과 치료 중 왼쪽 눈이 감염되어 안구를 적출했다.

회복대에 누운 그녀 곁엔 절친한 친구 나이팅게일 Nightingale이 지켜줬다.



1월 22일 여왕 빅토리아 서거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의 여왕이자,

신앙의 수호자이시며,

하노버의 공주님이자,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의 여공작이시고,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비이자,

작센의 왕자비이시다.

인도의 여황제이시며,

조지 4세 왕립 기사단장이고,

가터 기사단장,

엉겅퀴 기사단장,

성 패트릭 기사단장,

바스 기사단장,

세인트 마이클 앤드 세인트 조지 기사단장,

영국령 인도 기사단장,

인도 메리트 기사단장,

인도성(星) 기사단장,

로열 빅토리아·앨버트 기사단장,

인도 제국 기사단장,

인도 왕좌 기사단장,

무공 기사단장이시고,

빅토리아 왕립 기사단장이시기도 하다.

독일 제국 빌헬름 2세 황제의 외할머니이시며,

러시아 제국 로마로프 가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외할머니되시고,

윈저 가문 조지 5세의 친할머니이시며,

스페인 브르봉 가문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의 외할머니이시고,

노르웨이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모드 왕비의 친할머니이시며,

루마니아 호엔촐레른 가문의 마리아 왕비의 친할머니이시고,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가문의 소피아 왕비의 외할머니 되시는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Alexandrina Victoria 여왕 폐하께서,


    1901년 1월 22일 오늘, 서거했다. 향년 81세.

오늘 장례식에 외손자와 아들, 손자들이 나란히 섰다.
그후, 그들은 서로의 나라를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1월 21일 블라디미르 레닌 사망

 

    러시아 레닌 혁명은 대중 봉기의 결과가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선전하는 구호 뒤에 숨어서 정권을 잡은 소수당이 강제로 부과하여 실현된 것이었다.

국가경영, 기업경영의 경험도 전무하면서 신속하게 국유화를 진행시켰고,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을 전체 인구 1%의 산업 노동자의 적으로 보았다.

레닌의 새 정권은 독재 정치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음이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레닌은 '독재란 권력이다. 그 어떠한 것도 그것을 제한할 수 없다.'라는 정의 아래 무제한의 폭력 정치를 이어갔다.

그 결과 소비에트 경제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재앙이 됐다.

러시아인들은 역사가 그들에게 맡긴 대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고 레닌의 새 정부를 비난했다.

레닌에게 그들은 적이었다. 그는 그 적들을 찾아냈다.

어제는 그 적이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체포되어 강제로 추방됐다.

오늘은 그 적이 농민이었다.

그들은 모든 곡물과 땅을 빼앗겼다.

내일이 오면 그 적은 교회가 되었다.

그들은 교회 재산을 빼앗았다.

이런 곡물과 재산은 기근을 줄이는 데 사용된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국가의 필요에 의해 충당되었다.


    1924년 1월 21일 오늘,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했다.


출처 : 공산주의의 역사, 리처드 파이프스 저



1월 20일 두려움속의 안네 프랑크와 오드리 헵번

 

    1929년 6월에 태어난 안네 프랑크가 그 좁은 집에서 공포의 시간을 보낼 때, 

같은 해 5월생인 또 다른 한 소녀도 배고픔과 두려움 속에서 지냈다. 둘은 고작 90km 떨어져 있었다.

그 소녀는 전쟁 후 살아남았다. 소녀는 출판된 '안네의 일기'를 한 줄 한 줄 외우다시피 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애는 실내에서만 지내고 나는 밖에 나갈 수 있다는 거였어."

그것은 작은 차이가 아니었음을 그 소녀는 알고 있었다.

후에 소녀는 교향곡 "From The Diary of Anne Frank"에서 안네의 일기를 낭독했다.

수익금 전액은 유니세프가 지원하는 어린이에게 돌아갔다.


    1993년 1월 20일 오늘, 그 시절 전쟁의 치하에서 굶주림에 시달렸던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이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오드리 앳 홈, 루카 도티 저



1월 19일 자식까지 죽여 가며 충성한 자의 최후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관중'은 주군 '제환공'에게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

'이아'를 절대 멀리하라. '이아'는 요리사로 자식을 삶아서 주군의 입맛을 돋워 준 인물이다.

" 이 세상에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큰 사랑은 없다."가 이유였다.

그러나 제환공은 지척에 둔 '이아'에 의해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시신은 방치됐다.


    전국시대, '위문후'는 북쪽의 '중산국'을 정벌코자 대장군으로 '악양'을 삼았다.

그러나 '악양'의 아들이 이미 '중산국'의 높은 관직에 있었다.

모든 신하들이 염려, 반대했지만 '위문후'는 '악양'에게 병권을 주어 내보냈다.

악양은 군대를 이끌고 중산국의 성앞에 당도했다. 그의 아들이 나와 병력을 물릴것을 요구했다.

악양은 한 달의 기한을 줄 테니 중산국 왕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라하고 돌려 보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가고 세 달이 흘렀다.

왕 위문후에게 악양이 아들과 공모하여 역모를 꾸미려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위문후는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중산국은 악양의 아들을 죽여 국을 끓여 그에게 보냈다. 악양은 크게 이미 죽은 아들을 크게 꾸짖은 후 마셔버렸다.

겁을 먹은 중산국의 왕은 자살했고 성문은 열렸다. 성안의 백성은 크게 안도했다.

위문후는 악양 장군에게 크게 상을 내리고 치하했다.

그러나 바로 퇴직시키고 병권을 회수했다.


    1974년 1월 19일 오늘, 중국 허베이성의 한 공사현장에서 위문후의 "죽서기변(竹書紀年)"이 발견됐다.

그 죽간에 그 당시 '위문후'의 심정이 담겨 있었다.

" 자신의 자식까지 죽여가며 공을 세운 사람은 단 한번의 기용만으로 족하다."


출처 : 평설 열국지 유재주

십팔사략 고우영



2월 7일 혐오가 사랑을 저주하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멋진 도시 뉴올리언스를 집어삼켰다. 수십만 명의 이재민과 함께 1,400여 명이 희생됐다. 제방 보수 예산 삭감은 허술한 제방을 방치했다. 도시의 80%가 물에 잠기게 했다. 그해 9월 5일자 신문에 목사 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