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0일 금요일

1월 11일 세계 최초의 복권 추첨

     1560년대 영국의 통치자 엘리자베스 1세의 고민은 막대한 국방 자금이었다.

세금을 더 이상 올릴 수도 없었다.

여왕은 꾀를 냈다.

복권의 발행이었다.

1장 10실링, 당청금은 5,000파운드였다.

노동자의 한 달 치 급여로 50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당첨금이었다.


    1569년 1월 11일 오늘, 런던의 세이 폴 대성당 문앞에서 세계최초의 국가 발행 복권 추첨식이 있었다.

당첨자는 나오지 않았다.

발행한 복권은 40만장이었지만 판매된 복권은 3만장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모든 수익금은 여왕이 가져갔다.



1월 10일 나폴레옹의 이혼

 

    "나의 사촌들, 대신들, 그리고 귀족들이여.

지난 15년 동안 나의 삶을 아름답게 해주었던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지기로 한 나의 결정은 오직 프랑스의 안녕을 위한 것이다.

우리 사이에 후계자를 얻을 희망이 사라졌기에, 나는 개인적인 감정을 희생하고 국가의 이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황후의 지위와 명예를 영원히 유지할 것이며, 무엇보다 그녀는 나의 가장 친밀한 친구로 남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나를 위해 치른 이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1810년 1월 10일 나폴레옹 Napoléon.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황제이신 분의 허락을 얻어 선언합니다.

프랑스의 안녕과 정책을 위해, 그리고 제국의 앞날을 위해 후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저는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제 제 생애 가장 커다란 희생을 기꺼이 바치고자 합니다.

저는 이제 황후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하지만 제가 황제의 곁에서 보낸 지난 세월의 명예와 사랑은 영원히 제 가슴속에 남을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분께 저의 모든 충성과 사랑을 남겨둔 채 저는 떠납니다."

1810년 1월 10일 조세핀 드 보아르네(Joséphine de Beauharnais)


    황후의 싸인은 심하게 흔들렸으며 2014년 경매에서 43만 5천유로(6억원 이상)에 낙찰됐다.

나폴레옹의 사인이 든 이혼 서류는 프랑스 당국이 보관중이다.



1월 9일 그래도 보고싶다 내 아들

 

    1940년생인 배은심은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녀는 광주에 살았다. 1980년에도 아이들은 무사히 커 주었다. 자랑스런 아들은 서울로 유학갔다.

1987년 6월 9일 그 아들이 최루탄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겁지겁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혼수상태, 그리고 27일간을 그곳에서 밤을 지새웠다.

최루탄에 맞아 피흘리는 아들의 사진이 전 세계 신문에 게재됐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군부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민주화 열기는 들불이 됐다.

결국 전두환, 노태우는 손을 들고 직선제를 선언했다.

아들은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7월 5일 어머니 배은심의 아들은 열사가 되어 숨을 거뒀다.

배은심은 아들의 뒤를 이어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

그녀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그러나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단단하고 현실적이었다.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아들을 죽인 책임을 묻기로 했다. 서대문 경찰서장, 중대장, 소대장, 그리고 최루탄을 쏜 전투경찰 1인을 살인죄로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기각했다.

국가를 상대로한 민사소송도 이어졌다. 1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아들의 핏값"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돈을 받지 않으면 국가에 귀속된다는 규정에 따라 수령했다.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다.

작은 집을 샀다. 그리고 "이한열 기념관" 현판을 달았다. 훈장도 달갑지 않았다.

그저 국가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명예를 되찾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함께 위로했다.

“맘 단단히 먹소. 앞으로 더 기막힌 일이 많을 것이네.”

[출처] “보고 싶다 내 아들, 이한열.” ‘이한열 어머니’ 배은심 친필 메모|작성자 여성동아


    두 번 쓰러졌다. 2022년 1월 9일 오늘 새벽 또 쓰러졌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꾹꾹 눌러 쓴 작은 메모 하나 남겼다.

"그래도 그립다

보고 싶다.

내아들, 이한열,"



1월 8일 그래도 지구는 돈다

 

    파도바 대학의 한 교수는 턱없이 부족한 교수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과학 기구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그는 망원경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원통을 준비하고 그 양끝에 두 개의 유리 렌즈를 부착했다. 하나는 볼록이고 다른 하나는 오목했다.

그것으로 본 물체는 9배나 커보였다. 다시 60배의 성능으로, 또 1,000배로 확대해 볼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의 망원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이 지상의 물체를 관찰할 때, 그는 천체를 관찰했다.

달을 관찰했다. 일반 대중은 당시 완전한 구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랬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망원경을 통해 달에도 지구처럼 산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1610년 1월 7일 어제, 더 개량된 망원경으로 목성 주위를 도는 4개의 위성을 발견했다.


    1642년 1월 8일 오늘, 플로렌스 근교 아르체트리의 격리된 집에서 감금생활을 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사망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나직히 읊조렸다. 듣는 이는 없었다. 오늘은 상식이 됐다.


출처 : 지식의 원전 존 캐리 저, 바다 출판사



1월 7일 백만번의 키스를 보내며



    "사랑하는 누나에게,"

지금 밀라노에서는 오페라 공연이 한창이야.

그런데 누나, 공연하는 여가수가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

목소리는 너무 높아서 꼭 찔리는 소리 같고, 연기는 어찌나 어색한지!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시지만, 나는 웃음이 나와서 혼났어.

누나, 누나의 이탈리아어 공부는 잘 되어가고 있니?

나중에 내가 돌아가면 꼭 이탈리아어로 대화해 보자.

이곳 사람들은 말끝마다 손을 흔드는데 참 재미있어.

우리가 내일 어디로 떠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하지만 어디에 있든 나는 누나를 생각할 거야.

누나의 손에 백만 번의 키스를 보내며.


    누나의 영원한 동생

- 볼프강 Wolfgang으로부터


    1770년 1월 7일



1월 6일 송아지의 아버지 탄생

 

    6.25 전쟁, 아내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군복무를 위해 남하한 남편을 찾아 피난길에 올랐다.

가산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아내의 재봉틀이 전부였다.

피난 도중 어린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재봉틀을 팔아 쌀을 장만했다.

어린 장남이 그 쌀자루를 맡았다.

그 와중에 아내와 아들이 헤어졌다. 아들은 쌀자루를 어느 청년이 들어 준다는 말에 내어 주었다.

청년의 발걸음은 빨랐다. 따라갈 수가 없었다.

따라가자니 뒤 따라 오는 어머니와 동생들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있자니 쌀을 놓칠 것 같았다. 아들은 어머니를 선택했다.

허겁지겁 뛰어온 아내는 울고 있는 아들과 그의 빈손을 보았다.

"내 아들이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하며 아들의 머리를 껴안았다.

아내와 아들은 아버지를 대구에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1915년 1월 6일 오늘, 그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시인 '박목월'이 탄생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상봉 이후의 역사는 3월 24일의 역사에서



1월 5일 12,000프랑의 통조림

 

    나폴레옹에게 있어 군인이 상한 음식을 먹고 죽어 나가는 것은 전쟁 승패의 가장 큰 관건이라 여겼다.

냉장고가 나오려면 40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나폴레옹은 거액의 공모전을 기획했다.

병사들을 위한 안전한 음식의 저장방법에 대하여.

프랑스 요리사 '니콜라 아페르 Nicolas Appet'가 이 문제에 정답을 제시했다.

유리병에 음식을 넣어 가열한 후 밀봉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경이의 대상이었다,

재료를 수확했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보존해 준다고 감탄했다.


    1810년 1월 5일 오늘, '통조림의 아버지' 니콜라 아페르'가 나폴레옹의 공모전 상금 12,000프랑을 획득했다.

현재가치로 2억이 조금 안되는 금액이었다.


출처 : 음식과 요리 헤럴드 맥기



2월 7일 혐오가 사랑을 저주하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멋진 도시 뉴올리언스를 집어삼켰다. 수십만 명의 이재민과 함께 1,400여 명이 희생됐다. 제방 보수 예산 삭감은 허술한 제방을 방치했다. 도시의 80%가 물에 잠기게 했다. 그해 9월 5일자 신문에 목사 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