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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1일 목요일

🪖 1980년 5월 18일 — 광주

19년 전, 한 대위가 거짓 보고로 별 셋 하나를 제거하고 박정희의 쿠데타를 완성시켰다. 그 대위의 이름은 전두환이었다. 19년 뒤, 그는 같은 일을 훨씬 큰 규모로 다시 한다.

⭐ 권력을 향해

전두환은 더 이상 대위가 아니었다. 1979년 10·26 이후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으로 권력을 잡기 시작했고, 12월 12일 군사반란으로 군권을 장악했다. 남은 것은 무력을 권력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1980년 5월 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가 결의됐고, 국무회의는 이를 형식적으로 승인했다. 그날 밤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됐고, 김대중 등 정치인들이 한꺼번에 연행됐다. 계엄군이 전국 주요 도시와 대학에 배치됐다.

🪖 5월 18일, 광주

대부분의 도시에서 시위는 군대 앞에서 가라앉았다. 광주는 달랐다.

5월 18일 전남대 학생들이 계엄에 맞서 시위를 일으키며 항쟁이 시작됐다. 광주에 투입된 부대는 전투 훈련을 받은 공수특전여단이었다. 

그날 거리의 폭력은 시위 진압의 범위를 넘어섰다. 계엄군은 학생을 구타하고 연행했을 뿐 아니라 시민에게도 폭행을 가해 심각한 부상을 입혔다. 시위한 학생뿐 아니라 시위하지 않은 학생, 학생이 아닌 시민까지 군홧발에 차이고 진압봉에 맞고 끌려갔다. 거리에 있던 사람이면 누구든 표적이 됐다.

🕯️ 5·18의 최초 사망자로 기록되는 김경철은 시위대가 아니었다. 청각장애로 상황을 알지 못한 그는 7공수여단 부대원들에게 붙잡혀 무차별 폭행을 당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졌다. 

🌊 미국, 그리고 촘스키의 기록

항쟁은 열흘간 이어졌고 5월 27일 새벽 공수부대의 진압작전으로 끝났다.

광주가 고립된 동안 한국 바깥에서도 일이 진행됐다. 5월 22일부터 미 국방부는 한미연합사 지휘 체계 아래 신군부가 광주를 재탈환할 수 있도록 군사력을 한국 주변에 배치했다. 미 항공모함 코럴시함이 부산에 입항하자, 고립된 광주 시민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도우러 왔다고 오해해 기뻐했다. 사실은 반대였다.

📖 노엄 촘스키는 『정복은 계속된다』에서 광주 진압이 미국의 묵인과 협조 아래 이루어졌다고 기록했다. 이 점은 이후 공개된 미국 측 문서와 대체로 일치한다.

🩸 남은 것

19년 전, 전두환은 거절을 방해로 바꿔 별 셋 하나를 제거했다. 1980년 5월, 그는 시민의 저항을 폭동으로 바꿔 한 도시를 진압했다. 수법은 같았고, 규모만 달라졌다.

광주광역시가 2009년에 집계한 결과를 기준으로, 그 민주화로 평범한 시민과 학생 264명이 목숨을 잃었고, 166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부상자와 구속·구금 피해자 등 약 4,700명이 아직도 그날의 상처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참고 : 정복은 계속된다. 노암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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