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야
누이야 네 가슴에 타오르는 그 사랑을
뉘게 다 주랴 하오?
네 앞에 손 내민 조선을 안아주오
안아주오!
누이야 꽃 같이 곱고 힘있고 깨끗한 몸을
뉘게 다 주랴 하오?
뉘게 다 주랴 하오?
네 앞에 팔 벌린 조선에 안기시오
안기시오!
누이야 청춘도 가고 사랑도 생명도 다 가는 인생이요
아니 가는 것은 영원한 조선이니
당신의 청춘과 사랑과 생명을 바치시오, 조선에!
이 시 "누이야"의 누이는 1891년 생인 '김 마리아'이다.
조선에서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1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19년 2월 8일 오늘, 도쿄의 유학생들이 도쿄 한복판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며 독립을 외쳤다.
경찰은 학생들을 무참히 폭행, 연행, 체포했다. 그녀도 체포되어 조사 후 풀려났다. 그녀는 10부의 '독립 선언서'를 기모노 허리띠(오비 帯) 안쪽에 숨겼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부산을 거쳐 광주, 대구, 서울등 전국을 돌며 '독립 선언서'를 각계 지도자들에게 전달했다.
"우리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제 어른들이 답할 차례입니다." 그녀는 28살이었다.
이 선언문은 국내 지도자들을 각성하게 했고, 또 그들이 움직였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도쿄의 오늘 2.8 만세운동이 한반도 전역에서 폭발했다.
김 마리아도 적극적으로 3.1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인두로 왼쪽 가슴이 지져지는등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배후를 묻는 법정에서도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라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다.
평생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해방을 채 1년 앞두고 고통속에 사망했다.
이 시를 그녀에게 바쳤던 춘원 이광수는 철저히 변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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