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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6일 월요일

🌍 2월 17일, 지오르다노 브루노의 화형, 굽히지 않은 신념

     🌍 "나는 내가 말한 오류와 이단을 포기하며 저주하고 거부합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에서 8명의 심판관과 '벨라르미노' 추기경 앞에서 이렇게 서명하고 화를 면했다. 벨라르미노 추기경은 갈릴레이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본인의 천재적인 학설을 포기하도록 설득했으나, 갈릴레이가 거부하자 이단으로 판결했다.

노령이던 갈릴레이는 생명을 지키고자 권력과 타협했다면, 같은 시대를 산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지오르다노 브루노'는 달랐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넘어 "우주는 무한하여 중심이 없고, 밤하늘의 별들은 우리 태양과 같은 또 다른 항성이며, 그 주위에는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고 있는 수많은 행성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다원우주론'을 주장하며 당대의 종교적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더 나아가 삼위일체나 동정녀 잉태 같은 가톨릭의 핵심 교리마저 부정했다.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교리를 위협받은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1592년 베네치아에서 종교재판소에 체포된 브루노는 로마로 압송되어 무려 7년 동안 투옥된 채 가혹한 심문을 받았다. 교황청은 그에게 살려주는 대가로 주장을 철회할 것을 끝까지 요구했으며, 마지막 40일간의 유예 기간이 허락되어 친구들이 살려보려고 노력했지만 브루노는 자신의 철학적 신념과 과학적 사유를 굽히지 않았다.


    🔥 1600년 2월 17일,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꽃의 광장) 한가운데에 장작더미가 쌓였다. 교회는 형장으로 끌려 나온 브루노가 군중을 향해 마지막 연설을 하거나 이단적인 말을 뱉는 것을 막기 위해 쇠꼬챙이로 그의 혀를 꿰어 입을 굳게 막아버렸다. 알몸으로 형주에 묶인 그는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눈앞에 들이민 십자가마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결국 그는 산 채로 불태워졌고, 남은 재는 테베레강에 버려졌다.

갈릴레이가 벨라르미노 추기경 뒤에서 "그래도 그것은 돈다(Eppur si muove)."라고 웅얼거렸지만, 브루노는 자신에게 화형을 선고한 벨라르미노 추기경 앞에서 당당하게 외쳤다.

"나를 심판하는 그대야말로 나보다 더 두려워 떨고 있지 않는가?"

그는 육신이 화염에 휩싸이면서도 "내 영혼은 불꽃이 되어 하늘나라에 오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마지막으로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출처: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 김삼웅 저)


1889년, 그가 화형당한 날(1600년 2월 17일)을 기리기 위해 원래는 2월에 제막식을 열려 했으나, 교황청의 거센 반발과 여러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일정이 미뤄져 결국 그해 6월 9일에 제막식이 거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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