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9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2곳) 등 총 4곳의 민간 아파트에서 강력한 폭탄 테러가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당시 러시아 총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테러를 체첸 분리주의 반군의 소행으로 규정하며 "테러리스트들을 화장실에 처박아 몰살시키겠다"는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며 제2차 체첸 전쟁을 전격 개시했다. 며칠 후 모스크바 인근 '라쟌'시의 한 아파트 지하실에 괴한들이 폭탄을 설치하는 장면이 목격되어 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했다. 그들이 소지한 포대에선 기폭장치와 군용 폭약인 헥소겐(RDX)이 담겨 있었다. 조사 결과 그들은 체첸 반군이 아닌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현역 요원들이었다. FSB 본부는 "그것은 실제 테러가 아니라 지역 당국의 대응을 점검하기 위한 '대테러 모의 훈련'이었으며, 포대에 들어있던 것은 폭약이 아니라 설탕이었다"고 공식 발표하고 체포된 요원들을 석방했다. 하지만 현지 경찰과 폭발물 전문가들이 이미 폭약 성분을 확인한 뒤였기에, FSB가 전쟁의 명분과 푸틴의 권력 강화를 위해 자국민을 상대로 테러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 러시아 아파트 연쇄 폭탄 테러(Russian apartment bombings)로 3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는 1,000명이 넘었다. 그러나 무명이던 푸틴은 단숨에 압도적인 지지율을 확보하며 이듬해(2000년)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가 이 아파트 연쇄 폭탄 테러의 진실을 파헤치기에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탐사 보도국장이던 '이고르 돔니코프'는 러시아 정부의 심각한 부패와 신흥 재벌(올리가르히)들의 유착 관계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고발해 왔다. 그는 2000년 5월 12일, 푸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5일 뒤,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건물 입구에서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망치로 머리를 수차례 가격당했다.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다 두 달 뒤 숨을 거뒀다. '노바야 가제타'의 부편집장이자 국가두마(하원) 의원이었던 '유리 슈체코치킨'은 의회 차원의 아파트 폭탄 테러 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으로 이 폭탄 테러가 연방보안국(FSB)의 자작극임을 파헤치고, 연방보안국 고위층이 연루된 대규모 돈세탁 및 밀수 사건을 조사 중이었다. 일명 '세 마리 고래' 사건이라 불린 밀수 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미국 FBI에 전달하기 위해 출국을 며칠 앞두고 있던 그는 갑자기 쓰러졌다. 피부가 벗겨지고 내부 장기가 차례로 타 들어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12일 만에 사망했다. 당국은 희귀 질환에 의한 사망이라고 발표하고 부검 기록을 국가 기밀로 봉인해 버렸다. 이 독립적인 의회 진상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를 최전선에서 이끌던 '세르게이 유센코프'는 동료 의원 '유리 슈체코치킨'이 사망하기 3개월 전,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자택 아파트 앞에서 괴한이 쏜 소음기 장착 권총에 가슴 등 세 군데를 맞고 현장에서 피살됐다. 그는 반푸틴 성향의 '자유러시아당' 공동 당수이기도 했다.
결국 두 핵심 조사 위원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해 아파트 테러의 진상 규명 시도는 사실상 완전히 좌절되고 말았다.
역시 '노바야 가제타'의 간판 여기자였던 '안나 폴리트콥스카야'는 제2차 체첸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강제 실종, 고문의 참상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그녀는 수많은 살해 협박과 독살 미수를 겪어 오던 중, 2006년 10월 7일에 모스크바 자택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슴과 머리에 총탄을 맞고 암살당했다. 그날은 푸틴의 54번째 생일이었으며,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체첸의 실권자 '람잔 카디로프'의 지휘 아래 푸틴의 생일을 축하하는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가 암살당하자 영국에 망명 중이던 전직 연방보안국(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배후로 푸틴과 FSB를 지목하고 추적에 나섰다. 리트비넨코는 1999년 러시아 아파트 연쇄 폭탄 테러가 체첸 전쟁의 명분을 얻기 위한 FSB의 자작극이라고 폭로했던 인물이다. 2006년 11월, 런던의 한 호텔에서 과거 동료들을 만난 그는 찻잔에 담긴 맹독성 방사성 물질 '폴로늄-210'을 마시고 중독됐다. 그 역시 머리카락이 빠지고 장기가 파괴되는 고통 속에서, 그는 죽기 직전 "나를 죽일 순 있어도 진실을 덮을 순 없다"는 유언을 남겼다. 암살당한 안나 폴리트콥스카야의 유족을 대리하던 인권 변호사였던 '스타니슬라프 마르켈로프'는 '노바야 가제타'의 수습 기자 '아나스타시아 바부로바'와 인터뷰를 마치고 길을 걷던 중,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옆에 있던 '바부로바'가 도주하는 암살범을 쫓아 뛰어갔으나 암살범은 그녀의 머리에도 방아쇠를 당겼다. 둘은 현장에서 피살됐다. 인권 운동가인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는 '안나 폴리트콥스카야'와 막역한 동료였다. 안나의 죽음 이후에도 체첸에 남아 친러시아 정권의 납치와 고문 실태를 조사하던 2009년 7월, 체첸 수도 그로즈니의 자택 아파트 앞에서 괴한들에게 차량에 납치되어 당일 오후, 인근 잉구셰티야 공화국의 도로변 숲속에서 머리와 가슴에 총상을 입고 무참히 버려진 시신으로 발견됐다.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인 '드미트리 무라토프'는 자사 기자 및 기고인 등 암살당한 동료들의 장례식을 치르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신문을 지키며 탐사 보도를 이어갔다. 이런 끈질긴 저항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시상식에서 진실을 파헤치다 목숨을 잃은 6명의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들에게 노벨상을 바쳤다. 또한 노벨 평화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고 낙찰가 1억 350만 달러 약 1,300억 원은 전액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어린이를 돕기 위해 기부했다.
2024년 2월 16일, 반부패 운동가이자 야권 지도자였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북극권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20년 신경작용제 '노비촉' 중독으로 의식불명에 빠졌다 회복한 그는, 2021년 1월 체포를 각오하고 러시아로 돌아왔다. 정치적 혐의로 형을 선고받고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북극권 교도소로 이감됐다. 당국은 그가 산책 후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오늘은 2026년 2월 16일이다. 노바야 가제타는 2022년 러시아 내 발행이 중단됐으나, '노바야 가제타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망명지에서 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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