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4년, 영국 버밍엄의 불 스트리트(Bull Street). 존 캐드버리(John Cadbury)는 작은 식료품 가게를 열었다. 그는 퀘이커 교도(Quaker)였다. 퀘이커 교도들은 당시 사회 문제였던 알코올 중독과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금주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존 캐드버리는 술 대신 마실 수 있는 건강한 음료로 '코코아'와 '마시는 초콜릿'을 직접 맷돌로 갈아 팔았다.
1861년, 존의 건강 악화로 사업은 아들인 리처드와 조지 형제에게 넘어갔다. 형제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기술 혁신을 단행했다.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압착기를 도입해 코코아 원두에서 지방 성분인 '코코아 버터'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덩어리 지지 않는 부드러운 순수 코코아 가루(Cocoa Essence)를 출시했고, 이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문제는 남겨진 막대한 양의 **'코코아 버터'**였다. 리처드는 이 잉여 코코아 버터를 활용해 씹어 먹는 초콜릿(Eating Chocolate)을 개발했다.
이후 캐드버리는 급성장했다. 1905년, 농축 우유가 아닌 신선한 액상 우유를 사용한 '데어리 밀크(Dairy Milk)'를 출시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다. 1919년에는 조지 캐드버리가 주도하여 프라이 앤 선즈(Fry & Sons)와 합병, 영국 최대의 초콜릿 제조업체로 발돋움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캐드버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확장했다. 1969년 음료 회사 슈웹스(Schweppes)와 합병하여 '캐드버리 슈웹스(Cadbury Schweppes)'가 되었고, 전 세계 제과 시장에서 1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2008년 음료 부문을 분사하며 다시 제과 전문 기업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2009년 9월, 미국의 식품 대기업 크래프트 푸즈(Kraft Foods, 현 몬델리즈)가 캐드버리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 영국 정부와 노동조합은 "국민 기업을 외국 자본에 넘길 수 없다"며 반발했으나, 주주들의 이익 실현 욕구를 막을 수는 없었다. 2010년 1월, 크래프트 푸즈는 최종적으로 119억 파운드(약 21조 원)에 캐드버리를 인수했다. 186년간 이어져 온 영국 기업으로서의 독자적인 역사는 막을 내렸다. 여전히 1858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받은 영국 왕실의 조달 허가증(Royal Warrant)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퀘이커 교도 창업주가 꿈꿨던 '가족 경영'과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색채는 글로벌 대기업의 시스템 속으로 희석되었다.
💝 1868년 2월 14일 오늘, 성 발렌타인의 축일날, 리처드는 개발한 씹어 먹는 초콜릿을 담을 용기로 '하트 모양 상자(Fancy Box)'를 고안해 판매했다. 장미와 큐피드 그림도 넣었다. "초콜릿을 다 먹은 후, 상자는 연인의 편지나 소지품을 보관하는 함으로 쓰세요."라는 실용적인 마케팅은 적중했다.
이 '하트 상자'는 빅토리아 시대 연인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때부터 발렌타인데이 = 초콜릿 공식이 서양에 정착했다.
이것이 현대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상자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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