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대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이제 더 이상 독일 연방의 이원적 지배체계의 지속 불가능을 인지하고 있었다.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가 먼저 군사적 행동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도발 전략을 구사했다. 이탈리아 왕국과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시작할 경우, 이탈리아도 참전해 베네치아를 획득한다는 조건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즉각 군사 동원령을 선포했다. 1866년 6월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했다.
프로이센 군은 철도와 전신을 이용한 기동력과 정보력을 앞세워 오스트리아 군을 압도했다. 프로이센 보병이 보유하고 있던 일명 '바늘 총'인 후장식 드라이제 소총(Dreyse needle gun)은 아직 세련되진 않았지만, 다른 소총이 한 발씩 발사될때 세 발씩 쏠 수 있었으며, 특히 엎드려서 사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는 당시 전투에서 노출되지 않고 적을 사살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장점이었다.
1866년 7월 3일, '쾨니히그레츠 전투(Battle of Königgrätz)'에서의 승리로 전쟁은 종결됐다. 단 하루의 전투였고 전쟁은 7주만이었다.
패배한 오스트리아는 독일 연방에서 축출됐고,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 양도됐다.
이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부 유럽내 정치적 영향력의 상실을 의미했다. 또한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재정의 압박,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는 위축됐고, 군사적 패배에 따른 사회적 분위기는 무거웠다. 무도회와 카니발은 취소됐다. 비엔나의 시민들은 제국의 쇠락에 대한 불안감과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 🕺1867년 2월 13일 오늘,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패전의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을 경쾌한 왈츠 선율에 실은 합창곡 '요한 스트라우스 2세 Johann Strauss II'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The Blue Danube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 314)이 비엔나에서 카니발 시즌에 초연됐다.
'Wiener, seid froh!'
비엔나 사람들이여, 행복해라!'로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 후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연주되면서 곡의 위상은 달라졌다. 정치적, 군사적 패배로 위축되었던 오스트리아인들에게 도나우강의 유려한 흐름을 묘사한 왈츠의 선율은 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환기시키는 기제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패전국 오스트리아가 겪던 상실감을 문화적 자부심으로 대체했고, 비엔나 왈츠가 단순한 춤곡을 넘어 국가적 상징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도나우강은 짙은 갈색이거나 회색이다. 간혹 녹색을 띤 경우는 있지만 '푸른색'인 적은 없었다. 이 곡으로 '도나우강은 푸르다'이미지가 관념적으로 고착화됐다.
출처 : 유럽사 속의 전쟁, 마이클 하워드 저
새로 쓴 독일 역사, 하겐 슐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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