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으로 도성 조축 도감을 두어 판,부사,판관등을 임명하고 '정도전'에게 명하여 성터를 정하게 하였다.' - 태조실록 8권 4년.
'정도전에게 분부하여 새 궁궐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하니, 정도전이 이름을 짓고...의의를 써서 올렸다. ...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하고, ... 연침을 강녕전이라 하고, ... 그 남쪽을 근정전이라 ... 하였다.' - 태조실록 8권 4년.
'성 쌓는 역사를 마치고 정부(丁夫)들을 돌려 보냈다. ... 정북은 숙청문, ... 정동은 흥인문이니, ... 정남은 숭례문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 하였다.' - 태조실록 10권 5년 9월 24일.
'숭례문을 새로 짓는데 좌참찬등에게 명하여 그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 세종실록 117권, 29년.
'최호원이 상소하기를, ... , ... 국초에 ...산천의 높고 낮은데를 오르내리며 답사하여 드디어 한양에 도음을 정하였고, 숭례문 밖에 못을 파고 숭인문 안에 산을 만들었는데, 모두 도선(道詵)의 비보술(裨補術)을 썼으나 당시에 괴이히 여기지 아니하였고, 후세에도 다른 의논이 없었습니다.' - 성종실록 174권 16년.
여기서 '도선의 비보술은 풍수의 '결점을 보완하고 기운을 보충하는 기술'의 의미로 숭례문에서 바라보는 관악산의 화기를 염려하여 숭례문 앞에 연못(남지)을 만들어 화기로 부터 보호하기 위함을 뜻했다.
이러한 도선의 비보술은 연못외에도 광화문 앞에 불의 기운을 막는다는 해치상을 세웠다거나, 숭례문의 현판을 불의 형상으로 세워 배치했다는등의 해석으로 이어졌다.
2008년 2월 10일 오늘, 그러한 비보술에도 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였다.
소방차 60대, 소방관 128명이 즉각 투입, 진화 작업을 했으나, 문화재청의 조심스런 진화 요청에 소방관들은 기와를 뜯어내지 못하고 주저했다. 초기 대응이 늦어지면서 5시간만에 현판이 떨어지고 1,2층 목조 누각이 무너져 내렸다.
방화였다. 범인은 다음날 체포됐다. 태연히 마을 회관 앞 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자신의 토지 보상 문제에 대한 불만으로 방화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 그는 큰소리 쳤다.
화재 직후 정부는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복원에만 35,000명의 인력에 비용은 245억원이 소요됐다.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묘인 삼척의 준경묘 금강송이 복원을 위해 베어졌다.
정부가 허가한 문화재급 장인이 주를 이뤘다. 착공 3년만에 완공되어 개방됐다.
완공 후 단청이 벗겨지고 변색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국가에서 제공한 금강송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내부 고발이 이어졌다.
러시아산 소나무가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가 시작됐다.
곳곳이 비리였다. 최고 책임자인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 대목장은 지급받은 금강송 4그루, 각지에서 기증 받은 국산 소나무 일부를 자신의 창고로 빼돌렸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개인 소나무로 공사를 마무리했다. 그나마 다행은 러시아산 소나무는 아니었다.
단청 역시 전통 방식이 아닌, 화학 접착제와 화학 안료를 섞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 감독해야 할 일부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 혐의도 포착됐다.
그러나, 그렇게 숭례문은 완공됐다.
대목장은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자격은 박탈됐다.
2월 10일 오늘을 정부는 '문화재 방재의 날'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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