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8년 2월말 까지만 해도 아를의 마을은 흰 눈속에 잠자고 있었다.
그래도 아몬드 나무의 새잎은 나기 시작한다.
3월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프로방스의 바람이 불어오면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과수원에서의 놀라운 생명력은 화려하고도 밝은 색감으로 피어났다.
화가는 그 과수원에서 화가만의 노란색을 그렸다.
밤에는 맑게 빛나는 별들을 그렸다.
카페의 결코 어둡지 않은 밤의 빛을 그렸다.
화가는 "밖은 노란색으로 안은 흰색으로 칠해진 볕이 잘드는 집"을 빌렸다.
주머니를 털어 가구를 채웠다. 그리고 화가들끼리의 공동생활을 꿈꿨다.
초청장을 보냈다. 파리의 화가들은 답하지 않았다.
드디어 화가 한명이 아를에 왔다. 그러나 오만한 화가와 극단적인 화가의 만남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날 유독 심한 다툼이 있었다. 나중에 온 화가는 떠났다.
남겨진 화가는 그를 쫓아갔다. 그러나 혼자 돌아왔다.
1888년 12월 23일 오늘, 고갱을 쫓아갔던 고흐는 돌아와 왼쪽 귀를 잘랐다.
주민들은 이 "위험한 외국인 화가"를 내쫓았다.
고흐는 빈손으로 노란집을 떠났다.
고흐의 짧은 생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1888년의 추억이었다. 프로방스 아를은.
출처 : 예술, 도시를 만나다 전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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