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7년 생인 배용순은 열여섯에 한살 연하의 남자와 혼인했다.
남편은 맏아들이라 시동생과 시누이가 많았다. 남편은 정이 많거나 살가운 사람은 아니였다.
곧은 남자였다.
어느날 남편은 달라던 물 한잔 마시지 않고 집을 나섰다.
배용순은 둘째 임신중이었다. 첫째는 고작 세살이었다.
그해 사월 스무나흐렛날, 일본 경찰들이 집에 들이 닥쳤다.
남편이 일본군 사령관과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앞잡이들에게 폭탄을 던졌다는 것이다.
일본 경찰들은 구둣발로 방안을 뒤지고 가족들을 괴롭혔다.
'이를 악물었다. 모질게 마음을 다잡아 먹자고, 스스로 타일렀다.
정말이지 눈물 한방울 흘릴 겨를이 없었다.'
꿈에 남편이 나타났다. 목이 잘린 눈을 부릅뜬 얼굴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처형되었다.
얼마후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하고 태어났던 둘째가 죽었다. 남편이 이제라도 돌아오리라 믿었다.
남편은 뼈가 되어 돌아왔다.
'이렇게 되어 돌아올 사람을 십오년이나 기다렸구나...'
1932년 12월 19일 오늘, 배용순의 남편 윤봉길이 일본에서 처형되었다.
그녀는 일제의 모진 압박속에서도 시부모님과 가족들을 굳건히 지켜냈다.
출처 : 윤봉길의 아내가 된 불행 배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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