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사람'에서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마케도니아의 스테기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는데, 이 배경 덕분에 그는 어릴 때부터 생물학적 관찰과 실용적인 지식에 익숙했다.
17세에 아테네로 건너가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서 20년간 수학했다. 플라톤은 그를 "학교의 정신" 혹은 "읽는 사람"이라 부르며 아꼈다.
플라톤 사후, 그는 마케도니아로 돌아와 어린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다. 훗날 알렉산더가 정복 전쟁 중에도 희귀 동식물을 채집해 스승에게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자신만의 학교를 세웠는데, 이것이 근대 대학의 기원이 됐다.
"발은 땅에, 눈은 현실에"
스승 플라톤이 저 높은 곳의 '이데아(이상향)'를 바라봤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현실 세계에 있다"고 믿었다.
행복해지려면 극단을 피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고 그에 맞는 중용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무모함과 겁쟁이 사이의 '용기'가 바로 덕(Virtue)이라고 보았다.
세상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고 믿었다. 도토리의 목적은 참나무가 되는 것이고,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Eudaimonia)'이라고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몸에 밴 올바른 성품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늘 이렇게 강조했다.
"올바른 성품을 가지자."
흥미로운 숨은 이야기들
그는 제자들과 학교 복도를 산책하며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그와 그의 제자들을 '거닐며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소요학파'라고 부르게 됐다.
그는 개인적으로 방대한 양의 책을 수집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그의 수집벽 덕분에 고대의 방대한 지식이 체계적으로 분류될 수 있었고, 이는 훗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모델이 됐다.
당시 사람들은 물에 살면 다 물고기라고 생각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직접 해부해보고 "고래는 새끼를 낳고 폐로 숨을 쉬니 포유류다"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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