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세기 베네치아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
이곳은 부모가 키울 형편이 안 되거나 사생아로 태어난 여자아이들이 모여 지내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바느질이나 음악을 배웠다. 어느 날, 이곳에 붉은 머리를 가진 젊은 가톨릭 사제가 음악 교사로 부임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심한 천식을 앓고 있었다. 호흡이 가빠 미사를 집전하기조차 어려웠던 그는 제단에 서는 대신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단순히 연주법만 가르치지 않았다. 손가락이 짧은 아이를 위해서는 기교를 덜어낸 곡을, 특정 악기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를 위해서는 그 악기가 돋보이는 협주곡을 새로 썼다. 아이들의 신체 조건과 실력에 맞춘 이 '맞춤형 악보'들을 통해, 고아원 소녀들은 점차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리는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며 음악의 유행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늙어가는 사제의 음악을 찾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났지만, 그를 후원하기로 했던 황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전쟁마저 겹치면서 완벽히 고립됐다.
1741년, 빈의 한 허름한 셋방에서 그는 가난과 질병 속에 숨을 거뒀다. 시신은 빈민들을 위한 이름 없는 묘지에 묻혔고, 그가 평생에 걸쳐 작곡한 수많은 악보들은 행방을 알 수 없는 곳에 방치되었다. 그렇게 세상도 그를 잊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1926년 가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한 수도원 부설 기숙학교에서 지붕 수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창고에 쌓여 있던 옛날 종이 뭉치들을 내놓았다. 감정을 위해 토리노 대학교로 보내진 이 먼지 쌓인 더미 속에서, 누렇게 바랜 300여 곡의 친필 악보가 쏟아져 나왔다. 자식을 잃은 두 아버지의 막대한 기부금 덕분에 이 악보들은 뿔뿔이 흩어질 위기를 넘겨 온전히 보존되었고, 20세기의 사람들은 200년 만에 되살아난 선율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봄의 새소리와 여름의 폭풍우, 가을의 추수와 겨울의 칼바람이 담긴 협주곡이 현대인의 귀를 사로잡았다.
1678년 3월 4일, 베네치아에 강한 지진이 일어났던 오늘.
평생 천식과 싸우며 고아원 소녀들을 위해 악보를 그렸던 사제,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가 태어났다. 태어난 순간 아이의 숨은 너무나 가늘어 산파는 그 자리에서 긴급 세례를 주어야만 했다. 그는 평생 그 가쁜 숨을 안고 살았다.
🎵 / 🎶 비발디의 '사계'는 단순한 기악곡이 아니었다. 그는 각 계절마다 '소네트(14행시)'를 직접 써서 악보에 새겨 넣었다.
"봄이 왔다, 새들이 기쁜 노래로 축하한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비발디 본인의 문장으로 전해진다. 그는 어쩌면 위대한 작곡가이기 전에, 소리로 풍경을 그려낸 시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봄]
제1악장 봄이 왔다. 새들은 즐거운 노래로 인사를 하고, 시냇물은 산들바람에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천둥과 번개가 쳐 봄이 왔음을 알린다. 폭풍우가 지나가면 새들은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시작한다.
제2악장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목초지에서 나뭇잎들이 정답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염소지기는 충실한 개를 곁에 두고 깊은 잠에 빠진다.
제3악장 전원의 백파이프 연주에 맞춰 요정들과 목동들이 찬란한 봄의 하늘 아래서 즐겁게 춤을 춘다.
[여름]
제1악장 태양이 내리쬐는 뜨거운 계절, 사람도 양 떼도 더위에 지쳐 활기를 잃고 소나무조차 타들어 가는 듯하다. 뻐꾸기와 산비둘기, 방울새가 노래한다. 달콤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나 싶더니 갑자기 북풍이 몰아치고, 목동은 다가올 폭풍에 자신의 운명을 걱정하며 눈물짓는다.
제2악장 번개와 천둥 소리에 놀라 지친 몸을 쉴 수도 없다. 극성스러운 파리와 벌레 떼들이 사납게 달려든다.
제3악장 아, 그의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고 우박이 쏟아져 잘 익은 곡식들을 모두 망가뜨려 버린다.
[가을]
제1악장 마을 사람들이 춤과 노래로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축하한다. 술의 신 바커스가 준 포도주에 잔뜩 취해 모두가 즐겁게 잠에 빠져든다.
제2악장 춤과 노래가 멈춘 자리, 온화한 공기가 감돌고 계절은 모두에게 달콤한 잠과 평온한 휴식을 선사한다.
제3악장 새벽이 오자 사냥꾼들이 뿔나팔과 총을 들고 사냥개와 함께 길을 나선다. 짐승은 겁에 질려 달아나고 사냥꾼들은 그 뒤를 쫓는다. 요란한 소리에 지친 짐승은 결국 부상당한 채 쓰러져 죽는다.
[겨울]
제1악장 차가운 눈 속에서 온몸을 떨며, 매서운 바람을 피해 쉴 새 없이 발을 구르며 뛰어간다. 너무 추워서 이빨이 덜덜 떨린다.
제2악장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지만, 집 안 화롯가에서는 따뜻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제3악장 미끄러운 얼음 위를 넘어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는다. 서둘러 가다 미끄러지고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 힘껏 달려본다.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온갖 바람이 문틈으로 밀고 들어온다. 이것이 겨울이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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