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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일 일요일

⏳ 3월 2일,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식

 

🕌 분열의 시작: 예언자의 죽음 (서기 632년)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한 채 사망하자 이슬람 공동체는 거대한 혼란에 빠졌다. 다수파는 공동체의 합의로 선출된 '칼리프'를 따랐으나(수니파), 소수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인 사위 알리만이 정당한 승계자라고 주장했다(시아파). 이 '정통성'을 둘러싼 싸움이 1,400년 갈등의 시초가 됐다.

박해와 은폐: 11대 이맘과 12대 이맘의 실종 (9세기)

시아파 이맘들은 수니파 왕조(우마이야, 아바스)로부터 끊임없는 독살과 탄압의 위협을 받았다.

아바스 왕조는 "12번째 이맘이 나타나 압제자를 멸할 것"이라는 예언을 두려워하여, 11대 이맘 하산 알 아스카리를 군사 도시 사마라에 가택 연금하고 철저히 감시했다.

874년, 11대 이맘이 사망하자 그의 어린 아들(12대 이맘)은 신변 보호를 위해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소은폐). 약 70년 동안은 '나이브 Na'ib'라 불리는 4명의 대리인이 신자들과 이맘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공동체를 관리했다.

941년, 마지막 대리인이 사망하며 이맘은 완전한 은폐(대은폐)에 들어갔고, 시아파는 언젠가 그가 '마흐디(구원자)'로 돌아와 정의를 실현할 날만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종교'가 됐다.

혁명의 불꽃: 호메이니와 '이맘 대행'의 탄생 (1979년)

천 년 넘게 수동적으로 재림만을 기다리던 시아파 신학은 아야톨라 호메이니에 의해 혁명적으로 변했다.

호메이니는 "이맘이 부재한 동안에도 이슬람 법학자가 국가를 다스려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를 세웠다.(벨라야테 파기)

1979년, 친미 왕정을 무너뜨린 호메이니는 스스로를 '이맘'이라 칭하며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란 헌법은 최고 지도자를 '12번째 이맘의 대행자'로 공식 규정하며 신권 통치를 명문화했다.

또한, 세속화를 극도로 혐오했던 호메이니는 전 팔레비 왕조 초대 국왕 레자 샤(팔레비 1세)의 묘소부터 파괴했다. 

하메네이의 시대: 철권 통치와 내부의 균열 (1989년 ~ 2025년)

1989년 호메이니 사후, 알리 하메네이가 2대 최고 지도자로 등극했다.

종교적 권위가 부족했던 하메네이는 군부인 혁명수비대를 키워 권력을 공고히 했다.

하메네이는 '악마 같은 미군 부대들에 둘러싸인 이란이 핵무기 보유를 방어용이라며 합리화하며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장기 독재와 경제난, 그리고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촉발된 히잡 시위는 체제의 근간을 흔들었다.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는 청년 세대는 '이맘의 대행자'라는 종교적 명분보다 '인간의 기본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정권은 무자비한 강제 진압으로 대응했다.

역사의 급변점: 트럼프의 귀환과 하메네이의 사망 (2026년 오늘)

2025년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는 이란에 대해 유례없는 군사적·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이란의 핵 위협이 고조되던 중, 오늘  미군은 1,200발의 미사일을 집중 발사해 테헤란 내의 하메네이의 집무실과 거처를 포함한 세 곳을 정밀 폭격했다. 이 미군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37년간 이란을 통치해 온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그와 딸, 사위, 손주등 가족 4명이 전부 사망했다.

2026년 3월 2일 오늘, 하메네이 장례

오늘 오전 테헤란 대학교 교정에서 고위 성직자들이 주관하는 장례 예배가 거행됐다.

하메네이의 시신은 하얀 수의(Kafan)에 싸여 테헤란의 중심축인 엔켈랍(혁명) 광장을 지났다. 운구차 주위로는 혁명수비대원들이 겹겹이 인간 띠를 형성해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

시신은 테헤란 남부의 '이맘 호메이니 묘역'으로 옮겨져 초대 지도자 곁에 묻혔다.

여성들은 4년전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떠올리며 히잡을 벗어 던지며 "여성, 생명, 자유"를 외쳤다.

출처 : 제 2세계, 파라그 카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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