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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4일 토요일

📜 3월 16일, 광기의 전장에서 총구를 돌린 양심: 휴 톰슨과 기록자 데이비드 로빅스

 

🎤 기록자 데이비드 로빅스

데이비드 로빅스(David Rovics)는 1967년 미국 커네티컷주에서 태어난 인디 포크 가수이자 사회 활동가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어쿠스틱 기타 한 대를 들고 전 세계를 다니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곡을 발표해 왔다. 🎸 로빅스는 스스로를 상업적 예술가라기보다 음악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독립 저널리스트로 정의했다. 그의 음악 세계는 실용주의적이고 기록적이며, 주류 언론이나 역사 교과서에서 생략된 사실을 복원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곡 "Song for Hugh Thompson"은 이러한 그의 창작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

🚁 1968년 3월 16일: 작전의 시작

휴 톰슨은 다른 많은 조종사처럼 성조기를 위해 타국의 해안에서 싸우던 평범한 군인이었다. 그는 적을 사살하라는 명령에 따라 치명적인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1968년 3월 16일 오전, 톰슨은 정찰을 위해 마을 상공을 낮게 비행하며 적군을 수색했다. 그는 지면의 길 위에서 부상당한 아이 한 명을 발견했다. 톰슨은 이를 적군이 근처에 있다는 확실한 징후로 판단하고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곧이어 더 많은 헬기가 현장에 나타났다. 톰슨은 "부상자를 돕고 공격을 경계하라"고 외쳤다.

🔫 범인의 확인과 대치

그 순간, 길 위의 아이는 등을 관통한 총탄에 의해 사망했다. 톰슨이 현장의 범인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을 때 목격한 것은 적군이 아닌 미군 국방색 군복을 입은 한 무리의 병사들이었다. 미라이라 불리는 이 장소에는 수백 명의 시신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톰슨은 미군 병사들이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오두막을 조준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그 순간 옳은 것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톰슨은 자신의 헬기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미군(G.I.)들에게 무기를 겨눠라." 대원들은 명령에 따랐고, 겁에 질린 아이들 사이에 서서 아군과 대치했다.

⏳15분간의 대치와 구조

마을 전체에서 살육이 자행되었으나, 톰슨의 개입으로 일부 아이들과 여성이 남겨졌다. 톰슨은 이들이 확실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핏빛 바다 속에서,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과 죽은 자들의 침묵 사이에 선 채로 15분간의 대치가 이어졌다. 톰슨은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 열두 명의 아이들을 구출해냈다. 그러나 이날 미군에 의해 희생 당한 주민은 500명에 달했다.🧒👧

🖊️ 사건 이후의 기록

사건 직후 톰슨은 아군을 위협했다는 이유로 군 내부에서 '배신자' 혹은 '밀고자'로 불리며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반면 학살을 주도한 윌리엄 캘리 중위는 1971년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통령의 개입으로 3년 4개월의 가택 연금만을 마친 뒤 가석방되었다. 

⚖️ 사건 발생 30년이 지난 1998년, 미 육군은 톰슨의 행적을 공식 인정하며 '솔저스 메달'을 수여했다. 🏅 톰슨은 2006년 사망했으며, 캘리는 2009년 뒤늦은 참회의 말을 남긴 뒤 2024년 사망했다. 

데이비드 로빅스의 노래는 1968년 3월 16일, 명령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폭력과 그에 맞선 개인의 물리적 저항을 가사로 보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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