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태어난 '박정기'는 부산시 수도국의 공무원이 됐다.
결혼 후 세 자녀를 둔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막내아들은 서울대를 다니는 자랑거리였다.
정년의 그해 1987년 1월 14일, '처절한 심정으로 사지가 마비되는' 소식을 들었다.
그 자랑스러운 아들이 공안 당국의 수사관이 취조실에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빠른 화장을 압박했다. 이틀 만에 아들은 화장됐고 재만을 받아 들었다.
재로 변한 아들을 아직도 얼음이 가시지 않은 임진강에 뿌렸다.
차마 아들은 그 강물 위에서 떠나지 못하고 얼음에 갇혀 버렸다.
"철아. 잘 가거라. 에비는 할 말이 없데이."
아들의 죽음은 엄연한 국가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는 집에 칩거했다. 그러나 또 다른 부모의 아들이 죽어 나갔다.
아들처럼 그렇게 죽어간 또 다른 자식들의 진상과 명예를 위해 '투사'가 됐다.
먼저 자식을 이렇게 보낸 부모들을 모아 협의회를 만들고 이끌었다.
국가의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도 이어갔다.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한 농성도 벌였다. 135일간이었다.
자기의 처지처럼 의문사한 자식의 시신을 당국은 협박하여 화장하려 했다.
경찰을 영안실에서 온몸으로 막아섰다.
구치소에 구금됐다.
국회의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농성도 했다.
단식으로도 이어졌다. 특별법이 제정됐다. 422일 만이었다.
2018년 7월 28일 오늘, 민주화 운동 학생들의 아버지인 박정기가 사망했다.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도, 은폐를 주도했던 책임자들도 모두 잘 살고 있었다.
고 '박정기'는 아들의 가묘 옆에 묻혔다.
"종철아! 아버지는 할 일을 다 하고 왔다."
출처 : 박정기의 6,810일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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