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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9일 월요일

💀 2월 11일, '패션계의 악동'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

     💀 16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은 신이 만든 완벽한 세계를 지상에 구현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았다.

그들의 붓끝은 언제나 '상향 Upward'을 향해 있었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추구한 미학은 수학적 정교함이었다.

황금비를 통해 구현된 신체의 비례는 곧 도덕적 결함이 없는 상태를 의미했다.

그들의 작품은 '선과 악'이 분명했다. 천국은 행복이었고, 지옥은 형벌이었다.

르네상스는 예술의 목적을 관객에게 안식과 숭고함을 주는 것이라 했다.

황금비의 인간은 신의 모사로서 가당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됐다.


    16세기, 이 아름다운 시기에 히에로니무스 보스 Hieronymus Bosch가 자신만의 작품으로 르네상스를 해석했다.


    🎨 히에로니무스 보스 Hieronymus Bosch는 신이 만든 완벽한 세계를 캔버스에서 해체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았다.

그의 붓끝은 언제나 '하향 Downward'을 향해 있었다.

보스가 추구한 미학은 파괴적 기괴함이었다.

기괴하게 변형되서 다른 존재와 결합한 신체는 곧 도덕적 결함이 많은 상태를 의미했다.

그의 작품은  '선과 악'이 혼합됐다. 천국의 쾌락은 곧 고통의 전조였고, 지옥은 현실이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예술의 목적을 관객에게 공포와 경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기괴하게 변형된 인간은 숨겨진 탐욕과 광기로 묘사됐다.


    20세기말,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은 자신만의 런웨이에서 히에로니무스 보스 Hieronymus Bosch를 선보였다.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는 보스가 만든 기괴하고 해체된 세계를 그의 런웨이와 명품에서 표현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았다.

그의 패션은 언제나 '내향 Inward'을 향해 있었다.

맥퀸이 추구한 미학은 야만적 아름다움 Savage Beauty이었다.

찢긴 실루엣, 부드러운 실크 위에 칼날 같은 금속을 덧대거나, 화려한 자수 위에 박제된 새의 유골을 배치한 패션은 곧 상처입은 생명체처럼 무대위에 등장했다.

그의 패션은 ‘아름다움과 공포'가 하나로 혼합됐다. 우아함은 곧 억압의 징후였고, 장식은 상처의 다른 이름이었다.

알렉산더 맥퀸은 패션의 목적을 관객들에게 전율과 불쾌한 진실을 알리는 것이라 했다.

‘보기 좋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불편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아름다움이었고,

맥퀸의 인체는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영혼'이었다.



    2010년 2월 11일 오늘, 맥퀸이 사망했다. 목을 맨 자살이었다. 향년 40세. 내일은 그의 어머니의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이 두 거장은 만난 적도 만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맥퀸은 그의 유작에서 보스의 걸작 '쾌락의 정원'을 직접 사용했다. 오늘, '맥퀸'은 그의 유작을 들고 스승 '보스'를 만났다.


1490년에서 1510년 사이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가장 유명한 걸작,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입니다. 세 개의 패널로 구성되어 접고 펼 수 있는 목판 유채 제단화(Triptych)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에서 소장 및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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