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후반, 프랑스 리옹에서 사진 건판 제조업을 운영하던 뤼미에르 가문은 이미지의 고정에서 나아가 '움직임의 재현'에 주목했다. 루이 뤼미에르와 오귀스트 뤼미에르 형제는 토마스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가진 한계, 즉 한 번에 한 명만 구멍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를 대형 스크린에 투사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그 결과 촬영과 현상, 영사가 모두 가능한 단일 장치인 시네마토그래프를 완성했다.
📽️ 드디어 1895년 3월 22일 오늘, 파리 국가산업장려협회에서 역사적인 첫 시연이 이루어졌다.
과학자들과 전문가들 앞에서 상영된 필름은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La Sortie de l'usine Lumière à Lyon>이었다. 정지된 사진이 스크린 위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광경을 목격한 청중은 경탄했다. 이는 인류가 공유하는 시각 매체로서 '영화'가 공식적으로 세상에 보고된 순간이었다.
기술적 성공을 확인한 뤼미에르 형제는 같은 해 12월 28일, 파리 그랑 카페 지하 ‘인디언 살롱’을 빌려 일반 대중을 위한 상영회를 열었다. 입장료는 1프랑이었다. 지하 상영관은 스크린과 영사기, 그리고 적막을 메우기 위한 피아노 연주자로 구성되었다. 첫날 관람객은 33명에 불과했으나, 실제 기차가 달려오는 듯한 입체적 영상과 일상의 재현에 매료된 이들의 입소문으로 상영관은 곧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상영 직후, 관객석에 있던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는 이 장치의 잠재력을 즉각 간파했다. 그는 루이 뤼미에르의 아버지 앙투안 뤼미에르에게 달려가 기계를 팔라고 간청하며 당시로서는 거금인 10,000프랑을 제시했다. 1프랑의 입장료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액수였다. 그러나 앙투안은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기계는 판매용이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다행이죠. 이 발명품은 금방 잊힐 테니까요."
뤼미에르 가문은 영화를 단순한 과학적 기록 도구로 보았고, 그 생명력이 짧을 것이라 단언했다. 하지만 이 거절은 오히려 영화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기계를 구하지 못한 멜리에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자적인 카메라를 제작하기에 이르렀고, 뤼미에르가 '기록'하려 했던 스크린 위에 인간의 '상상력'과 '마술'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사실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환상의 시대가 태동하고 있었다.
(9월 1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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